나는 저널링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만으로는 내면의 나를 만나기 어렵다.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좋은 방법은 ‘내면의 나’에 자극을 주는 거다. 그리고 그 자극에 대한 반응을 기록으로 남기고 정기적으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바로 이 자극에 대한 ‘내면의 반응’을 기록한 것이 저널링이다.

저널링은 기본적으로 ‘글’이란 매개체를 통해 내면의 생각을 표현한다. 하지만 꼭 글일 필요는 없다. 내면의 생각을 담을 수 있다면 어떤 형태든 상관없다. 글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춤이든, 어떤 형태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을 쉽게 추적하고 분석하는 도구로는 글의 형태가 가장 좋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저널링은 글이란 매개체를 이용한다. 그런데 어려움이 있다.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한 사람도 있지만, 학창 시절 이후 글을 써본 적이 없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에게 내면의 생각을 글로 적게 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발견하려는 욕구는 있지만 저널링은 부담스러운거다.

하지만 좀 더 정직하게 이 문제를 살펴보자. 정확히는 글 쓰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내면의 생각을 끄집어내고 정리하고 표현하는 것이 서툴 뿐. 재료가 없으므로 글 쓰는 것이 부담스러운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학교에서건 가정에서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즐겁고 유쾌한 경험보다 좋지 않은 기억이 더 많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다 선생님이나 학생들에게 수치감을 느껴 마음을 닫은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글 쓰기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내면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에 소홀히 생각한다.

크리스천 귀소본능 학교, 존고즈홈(JohnGoesHome)은 기본적으로 하가저널링을 강조한다. 저널링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내면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덜 필요가 있겠다. 그러기 위해선 영적인 관점에서 저널링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먼저다. 가장 기초가 될 만한 아랫글을 읽지 않았다면 이 글부터 먼저 읽어보자.

저널링 관련 글 읽어보기

윗글을 다 읽었다면 아래 내용을 확인해가면서 틈날 때마다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1.
하나님은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시고,
그것을 기뻐하시는 분이다.
온 만물을 창조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시고
자신의 형상으로 표현된 사람에게도
동일한 능력을 부여하셨다.
창조자는 다른 말로 아티스트다.
표현의 절정은 예술(art)이다.
성령님은 아티스트에게 필요한
모든 영감(Inspiration)의 근원이다.
성령님은
거듭난 모든 자 가운데 내주하신다.
스스로 생각을 길어 올리려 할 때는 어렵다.
하지만 영감의 근원인 성령님을 의지한다면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저널링을 스스로 한다고 생각하면 어렵지만
도와주시는 성령님을 통해 하겠다고
관점을 바꾸면 의외로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도 있다.
성령님과 저널링을 함께 하는 과정을 통해
내면의 영역을
밖으로 끄집어 낼 수만 있다면,
저널링은 우리를 아티스트로 이끄는
훌륭한 도구가 될 것이다.

하나님.
당신은 창조자이자
아티스트임을 고백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당신의 영이
제 안에 내주하심을 믿습니다.
모든 영감의 근원이
제게 있지 않고 성령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로서
창조의 원형이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창조의 원형 회복 안에
표현의 회복도 포함되어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표현하시는 분이기에
저도 표현할 수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스스로 저널링을 하려 할 때
부담이 있지만
나를 발견하는 이 과정을
성령님과 함께 하길 원합니다.
기꺼이 도와주실
성령님을 신뢰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잠시 멈춰 서서 이런 내용을 담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기도해 보라.

2.
글 쓰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기보다,
글로 표현할 재료가 없기 때문에
글 쓰는 것이 부담일 수 있다.
많은 경우 ‘내면의 나’에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반응하는 내면의 생각을 길어올려
밖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
글로 표현하려 해도
쓸 재료가 없으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저널링은 작품을 쓰거나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문법이나 철자를 엄격히 따질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내면 세계를 담아내고
자신이 나중에 그것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자기만 이해하도록 쓰는 것도 방법이다.
글을 얼마나 잘 쓰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글 쓸 재료만 있다면
그 재료를 글로 얹히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저널링이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다.
내면의 영역은 스스로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성령님께서
빛을 비추시고 알게 하신다면
재료의 발굴도 어렵지 않을 수 있다.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가잘 잘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
제게 영감의 근원이신 성령님을 통해
내면의 영역에 빛을 비춰주시고
스스로도 알지 못하고
갖혀 있던 내면의 생각이
밖으로 표현되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영감과 감동을 불러 일으켜
성경의 저자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것처럼
제게 그와 동일한
영감과 감동을 주셔서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진리를 담은
재료를 발굴하게 하시고
기록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잠시 멈춰 서서 이런 내용을 담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기도해 보라.

3.
글 쓰는 것과 관련, 표현하는 것과 관련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는가?
그 경험이 은연중 잠재의식 속에서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기도로 푸는 것도
이 단계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혹시 모멸감이나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하게 한 사람들이 생각나면
각 사람에 대해
아래와 같은 기도를 반복해보자.

(생각나는 사람의 얼굴과
상황을 머리 속에 먼저 그려보자)

글 쓰고 표현하는 것과 관련
내게 불편한 경험을 하게 했던
OOO를 용서합니다.
의식의 영역에서 느끼지 못했을지라도
잠재의식 가운데 남아 있는
모든 불편한 감정을
이 시간 이 기도를 통해
풀기로 선택합니다.
과거의 사건이 내게 어떤 감정적,
심리적 영향도 미칠 수 없음을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나는 OOO를 존중하고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글 쓰는 것이 왜 부담스러운지,
왜 힘든지, 왜 싫은지 근본적 원인이
잘 생각나지 않을 수 있다.
글 쓰는 것과 관련
마음의 평안이 임할 때까지
아래와 같은 기도를 반복해보자.

글 쓰는 것이 힘들고, 귀찮고,
부담스럽고,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회개합니다.
쓰는 것의 주체를 ‘나’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도 회개합니다.
나는 글을 쓰기 싫어하고,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거짓말을
주님의 이름으로 깨뜨립니다.
나는 잘 쓰지 못하지만
주님은 잘 쓰시는 분임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능히
글을 쓰실 수 있는 분임을 믿습니다.
주님 안에 창조와 창작의 근원이
있음을 믿습니다.
저널링을 통해 기쁨과 치유와
회복이 임하고
저널링을 통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내면의 나를 발견할 것을 믿습니다.
이 시간 당신 안에서 흘러 오는
창조의 영을 받아 들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내면의 소리에 오랫동안 반응하지 않았던
내 자신을 용서할 필요가 있다.
내면의 정원을 가꾸지 않았던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아래의 기도를 드려보자.

내면의 소리를 무시하고
애써 외면해 왔던
제 자신을 용서합니다.
내주하신 성령님을
소홀이 여겼음을 회개합니다.
이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과정을 통해
십자가의 보혈 안에서
제 자신을 용서합니다.
주께서 저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기에,
저도 제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제 자신을 축복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고
존중하시는 것만큼
제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있음을 믿음으로 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님의 눈에 제 자신이
아무 흠없는 자입니다.
제 정체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그 어떤 정죄도 없으며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님은
언제나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소리에
반응하는 자로 살기 원합니다.
그 소리에 반응한 내용을
저널링으로 옮길 수 있도록
성령님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잠시 멈춰 서서 이런 내용을 담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기도해 보라.

4.
하나님은 영이시다.
‘영’은 히브리어로 루아흐,
헬라어로는 프뉴마다.
모두 ‘호흡’과 깊은 연관이 있다.
저널링을 쓰기 전에 심호흡을 깊이 해보라.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주님의 임재를 초대하고
호흡 가운데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인식하고, 인정해보라.
주님의 손이 내 저널링하는 손 위에
덧입혀지는 것을 상상하며
그 성령의 감동으로
저널링을 기록하기 원한다고 고백해보라.

사랑의 주님, 영이신 하나님.
(호흡을 깊이 하며…)
호흡이신 주님을 인식하고, 인정합니다.
이 시간 내 주인으로 임하여 주세요.
나를 사로 잡아 주세요.
내 손 위에 창세 전부터 저널링을 하신
주님의 손을 얹으시옵소서.
물리적으로는 제가 손을 사용하지만
사용하는 손을 통해
주님께서 영감과 감동으로
덧입혀 주실 것을 굳게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저널링을 시작하기 전에 언제나 이런 내용을 담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기도해 보라.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려면
그것을 밖으로 꺼내 적어보라.
내가 그것을 쓸 때까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른다.

I think namely writing out your thoughts
helps you know what you think.
I don’t know what I think
until I write it down.

– John Pip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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