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영적 저널링

나는 저널링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만으로는 내면의 나를 만나기 어렵다.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좋은 방법은 ‘내면의 나’에 자극을 주는 거다. 그리고 그 자극에 대한 반응을 기록으로 남기고 정기적으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바로 이 자극에 대한 ‘내면의 반응’을 기록한 것이 저널링이다. 저널링은 기본적으로 ‘글’이란 매개체를 통해 내면의 생각을 표현한다. 하지만 꼭 글일 필요는 없다. 내면의 생각을 담을 수 있다면 어떤 형태든 상관없다. 글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춤이든, 어떤 형태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을 쉽게 추적하고 분석하는 도구로는 글의 형태가 가장 좋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저널링은 글이란 매개체를 이용한다. 그런데 어려움이 있다.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한 사람도 있지만, 학창 시절...

일반 저널링과 영적 저널링의 차이는 무엇인가?

진리는 내가 믿고 있는 것, 내가 확신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믿고 계신 것, 하나님이 확신하고 계신 것이 진리다. 일반 저널링과 영적 저널링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적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믿고 계신 것을 적는가의 차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반복되는 잘못으로 인해 죄가 나를 참소한다. 감각이 나를 영적 침체로 이끈다. 감각의 영역에서 이것은 사실(fact)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 지시고 살아나셔서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의인이라 칭하신다. 이것은 믿음의 영역에서 진리(truth)다. 만일 내 감각이 주장하는 것을 믿고 그것을 적는다면 사실(fact)에 근거한 일반 저널링이다. 하지만 성령님을 의지하여 절망스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믿고...

‘저널링(Journaling)’은 내 인생의 바이블이 될 수 있을까?

저널링의 기원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록으로 표현한 것이 로고스 곧 말씀이다. 신약 성경을 보면 그 다수가 사도 바울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쓴 서신서, 즉 편지다. 편지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깊은 내면의 생각을 기록한 저널링과 다르지 않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서, 빌립보서 등의 편지를 쓸 때 자신의 편지가 성경이 될 것을 감안해서 썼을까? 결코 아니다. 그순간 마음을 다해, 진심을 다해, 성령님이 주신 감동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을 뿐. 그 당시 그 편지는 쓴 사람에게도, 받아서 읽는 사람에게도 성경이 아니라 그냥 편지였다. 하지만 성령의 감동이 더하여졌을 때 그 편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로고스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교회사적 과정을 거쳐 정경(正經, the...

‘저널링(Journaling)’ 하시는 하나님

‘내면의 나’를 알아 갈 때 좋은 방법은 내면의 나에 자극을 주고 그 자극에 대한 반응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활동보다 중요한 것은 그 활동을 하게 하는 내면의 그 무엇이다. 그래서 자극으로 주어진 모든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 감정, 취향, 세계관, 가치관, 철학, 관점을 표현하고 기록하고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창 1:27) 하나님은 자신 안에 있는 것을 표현하려는 갈망을 갖고 계신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 역시 내면의 것을 표현하려는 갈망이 내재되어 있다. 저널링의 시초는 하나님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저널링(Journaling)’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적 귀소본능과 저널링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려는 본능이 있다. 애벌레는 나비가 되려는 본능이 있다. 도토리는 떡갈나무가 되려는 본능이 있다. 모든 생명은 이처럼 자기 자신이 되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한 개의 도토리 씨앗 안에는 수천수만 가지의 상황과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결국 떡갈나무가 되게 하는 놀라운 본능이 숨어 있는 것이다. 크리스천에게도 하나님이 심어 놓으신 이런 본능(Destiny)이 있다. 이 본능 안에는 ‘내면의 부르심(inner calling)’이 분명 존재한다. 모든 생명이 자기 자신이 되려는 본능이 있듯 이 내면의 부르심은 자기가 있어야 할 위치로 부른다. 연어는 바다로 나가 수년을 살다 때가 되면 내비게이션이나 지도도 없이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정확히 돌아와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