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아니라 ‘하가’다

나를 알려면 하나님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려면 계시가 필요하다. 계시가 있으려면 잠잠한 시간이 필요하다. 잠잠한 시간을 갖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묵상이다.

가나안 땅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거창한 전략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전쟁 승리에 도움이 될 전략을 주신 것도 아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은 후 백 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을 책임져야 했다. 그런 그에게 가나안 전쟁을 앞두고 신신당부하신 것이 ‘묵상’이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비중을 두고 말씀하신 ‘묵상’의 원형적(原型的) 의미는 무엇일까?

1. 성경적 묵상은 ‘소리’가 중요하다

다른 종교도 묵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기계발 분야에서도 묵상을 강조한다. 묵상이란 단어를 들을 때 가장 먼저 마음의 평안을 위해 조용히 생각하는 것을 떠올린다. 국어 사전에서는 묵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묵상(默想) : 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함

하지만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묵상은 이와 전혀 다르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8)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묵상의 히브리어는 ‘하가(HAGAH)’다. 하가란 단어에 ‘생각하다, 사색하다’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더 근원적인 의미는 ‘중얼거리다(murmur, mutter)’ 혹은 ‘신음소리를 내다(moan)’이다. 즉 소리와 깊은 연관이 있는 단어다. 조용히 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묵상의 국어 사전 정의와 다르다. 하가를 사용한 다른 구절을 더 살펴보면 하가의 근원적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하가)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이사야 8:19)
…Seek unto them that have familiar spirits, and unto wizards that peep, and that mutter: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그들이 슬퍼하며(하가) 심히 근심하리니 (이사야 16:7)
…for the foundations of Kirhareseth shall ye mourn; surely they are stricken.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하가) 때에… (이사야 31:4)
…Like as the lion and the young lion roaring on his prey…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하가)… (이사야 38:14)
Like a crane or a swallow, so did I chatter: I did mourn as a dove:…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하가)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편 35:28)
And my tongue shall speak of thy righteousness and of thy praise all the day long.

위 구절들에서 ‘중얼거리다(mutter), 슬퍼하다(mourn), 으르렁거리다(roar), 슬피 울다(mourn), 말하다(speak)’의 히브리어는 모두 ‘하가’다. 묵상과 어울리지 않는 사자와 비둘기 울음소리에도 ‘하가’를 사용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강조하신 묵상(默想)은 눈감고 조용히 말씀을 깊이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다. 먹이를 움켜 잡고 으르렁대며 씹듯이 중얼거리는 사자와 같이 말씀을 씹고 읊조리며 중얼거리라는 것이다. 그것이 곧 ‘하가’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소리가 말씀 안에 들어 있다. 말씀은 그 자체로 영이요 생명이다. 하가는 말씀 안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소리를 이 땅 가운데 풀어내는 것이다. 딱딱한 말씀을 씹듯이 읊조리며 계속 중얼거릴 때 어느새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소리가 영과 생명으로 새어 나온다. 이렇게 영과 생명이 새어 나올 때 말씀 안에 있는 계시가 풀린다. 그 계시가 곧 영의 생각이다.

하나님은 왜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시며 다른 대안을 주시지 않고 ‘하가’를 강조하셨나? 일반적으로 자아는 생각의 주도권을 내려 놓지 못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여전히 생각의 주인은 ‘나’이기 쉽다. 내 생각의 주도권을 내려놓지 못한 가운데 조용히 사색하듯 생각하는 것은 ‘자아’만 더 강화시킬 뿐이다. 생각이 깊은 사람일수록 자아가 강한 이유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이성(理性)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내주하는 그리스도의 영과 연결하여 그 ‘영’을 강화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말씀이 들어가야 한다. 말씀은 진리 그 자체이지만 딱딱하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소화시키기도 어렵다. 이 딱딱한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소리로 중얼거리며 녹여낼 때 말씀 자체의 소리가 내 ‘이성(理性)’과 부딪힌다. 처음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계속 말씀의 소리로 이성에 충격을 가할 때 어느 한 순간 이성이 말씀 앞에 굴복한다. 두려움에 놓인 사람이 있다. 상황이 자신의 감정을 압도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믿음으로 말씀 한 구절을 택하여 계속 ‘하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려움의 감정이 말씀보다 컸다. 그러나 말씀으로 상황을 밀어내듯 ‘하가’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럴 때 미처 깨닫지 못했던 말씀의 한 부분이 툭 튀어나와 내 이성과 부딪힐 때 한 순간 이성과 감정이 그 말씀 앞에 굴복함을 경험한다. 이성과 감정이 말씀에 굴복하는 순간 감정을 붙들고 있던 두려움은 사라진다. 말씀을 ‘하가’하는 사람에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주야로 말씀을 ‘하가’할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하가’를 통해 말씀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기회를 얻는 것이다.

하가는 이렇듯 딱딱한 말씀을 중얼거리는 소리로 계속 녹여 내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내 이성과 감정 가운데 풀어내는 것이다.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생각이다. 이 생각의 주도권을 말씀에 넘기는 과정이 ‘하가’다.

‘하가’는 기록된 말씀에서 직접 퍼 올린 소리다. 말씀 안에 담긴 하나님의 음성을 내 이성에 들려주는 것과 동일하다. 그래서 욥기 37장 2절은 ‘하가’를 다음과 같이 사용한다.

하나님의 음성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헤게 from 하가)를 똑똑히 들으라 (욥기 37:2)

모든 죄와 시험은 생각에서 비롯한다. 생각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씀을 씹는 것이다. 되새김질 하듯 중얼거리며 말씀을 씹을 때 그 소리가 육신의 생각을 막는다. ‘하가’를 통해 말씀의 소리를 풀 때 영의 생각이 활성화된다. 생각에서 승리해야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가’하라고 강조하신 이유다.

2. ‘하가’의 핵심은 ‘기록된 말씀’과 ‘소리’와 ‘마음 중심’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하가’는 조용히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속삭이고, 중얼거리고, 슬퍼하고, 으르렁거리고, 구구 거린다. 이 ‘하가’ 소리의 공통점은 굳이 문법이나 문장 규칙을 엄격히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령이 갈급할 때 문장 규칙을 따져 소리내지 않는다. 포효하듯 ‘주여~’ 외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소리에 마음 중심이 실리기 때문이리라. 문법, 철자, 논리, 완벽한 문장은 이성이 좋아하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에 신경 쓰다 보면 영의 본능은 사그라질 수 있다. 때로는 논리에 맞지 않지만 부르짖는 마음 중심의 소리가 영을 일깨운다. 하나님이 ‘하가’를 말씀하신 이유는 이성을 강화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철저하게 말씀의 소리를 통해 ‘영’을 활성화하기 위함이다. 깨닫고 나면 무릎을 칠만한 하나님의 전략이다. 사람들은 머리로 말씀을 이해하려 한다. 가슴으로 말씀을 느끼려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말씀이 영이요 생명임을 기억하자. 영과 생명에 접근하는 것은 머리와 가슴이 아니다. 믿음이 실린 마음 중심이 먼저다. 기록된 말씀을 입으로 씹으며 마음 중심이 실린 소리로 발산할 때 그 소리를 타고 말씀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때 그 영이 내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내 삶의 주도권을 갖는다. 말씀이 내 삶에 영향력을 미칠 기회를 얻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는 계시의 빛이 임할 확률도 함께 높아진다.

3. ‘하가’의 주 목적은 하나님 마음을 아는 것이다

나를 알려면 하나님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려면 계시가 필요하다. 계시가 있으려면 잠잠한 시간이 필요하다. 잠잠한 시간을 갖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묵상이다. 묵상의 성경적 원형은 하가다. 결국 하가를 하는 주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 아는 것을 통해 나를 아는 것이다. 피조물인 사람들이 믿고 있는 ‘나’가 아니라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믿고 있는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먼저다. 하가는 말씀을 계시의 빛으로 변환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고, 말씀에 비친 나를 알게 하는 도구다.

탁월한 신학적 지식이, 뜨거운 열심이 ‘하나님을 알게’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성령님은 언제나 말씀을 ‘도로(road)’ 삼아 움직이신다. 딱딱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도 하루 종일 씹고 중얼거리고 되새김질할 때 그 위에 성령님이 운행하신다. 말씀을 재료로 빛으로 바꾸시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 순간의 빛이 마음을 비출 때 심령이 새로워진다. 그것이 참 영의 양식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나의 어떠함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과 내 마음 중심과 소리가 성령님과 함께 만나는 유기적 활동에 달려있다.

본격적으로 하가(HAGAH)를 공부하고 싶다면…

하가(HAGAH) 기초 – 가나안을 향한 하나님의 전략(1)
하가(HAGAH) 실전 – 가나안을 향한 하나님의 전략(2)

하나님의 말씀을 ‘하가’하며 풀어낸 기도야 말로
하나님께 가장 잘 상달된다.

Prayer that is born of meditation upon the Word of God
is the prayer that soars upward most easily to God’s listening ears.

– R.A. 토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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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 jung a
Ha jung a
3 months ago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먼저 알고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씀이 제 영의 양식이 되길 원합니다.
이성과 주관과 고집과 선입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날마다 읊조리며 제 안에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저를 가르치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경외함과 겸손함으로 말씀을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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