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저널링(Journaling)

저널링 사례 – 도스토예프스키

어느 사형수의 5분이란 아래 영상을 먼저 보자.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 한창 작품활동을 하던 28살 나이에 정치적 문제로 사형 선고를 받는다. 추운 겨울 아침. 광장 가운데 놓인 처형대 앞에 섰다. 사형집행관으로부터 “마지막 5분을 주겠다”란 얘기를 듣는다. 잠시 고민 끝에 이렇게 결정한다. 오늘까지 살게해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하는 데 2분,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과 형제에게 작별 인사하는데 1분, 그리고 교도소에서 함께 생활한 다른 사형수들과 작별인사하는데 1분, 그리고 나머지 1분은 눈에 보이는 자연과 신성한 땅과 공기에 감사하는 기도에 쓰기로… 처음 2분 기도하는 동안 눈물이 흘렀다. 바람결처럼 지나온 28년. 그 세월을 금쪽같이 쓰지 못하고...

저널링 사례 – 파스칼

천재 수학자이자 물리학과 철학 영역에서 큰 성과를 냈던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그를 유명한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로는 잘 알고 있지만 얼마나 뜨거운 믿음이 있었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파스칼은 1654년 불의의 마차 사고로 죽음의 위기를 겪었다. 그 이후 내적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 해 11월 23일 밤 약 2시간 가량 극적인 불과 같은 성령 체험을 했다고 한다. 파스칼은 그 때의 감격을 잊지 않기 위해 저널링으로 남겼다. 그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뜨겁게 임하셨는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파스칼은 그 때의 감동을 잊지 않기 위해 Fire라고 적은 양피지를 자신의 웃옷에 늘 부착하여 다녔다. 파스칼은 39세 이른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상을 떠난다...

나는 저널링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만으로는 내면의 나를 만나기 어렵다.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좋은 방법은 ‘내면의 나’에 자극을 주는 거다. 그리고 그 자극에 대한 반응을 기록으로 남기고 정기적으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바로 이 자극에 대한 ‘내면의 반응’을 기록한 것이 저널링이다. 저널링은 기본적으로 ‘글’이란 매개체를 통해 내면의 생각을 표현한다. 하지만 꼭 글일 필요는 없다. 내면의 생각을 담을 수 있다면 어떤 형태든 상관없다. 글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춤이든, 어떤 형태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을 쉽게 추적하고 분석하는 도구로는 글의 형태가 가장 좋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저널링은 글이란 매개체를 이용한다. 그런데 어려움이 있다.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한 사람도 있지만, 학창 시절...

일반 저널링과 영적 저널링의 차이는 무엇인가?

진리는 내가 믿고 있는 것, 내가 확신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믿고 계신 것, 하나님이 확신하고 계신 것이 진리다. 일반 저널링과 영적 저널링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적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믿고 계신 것을 적는가의 차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반복되는 잘못으로 인해 죄가 나를 참소한다. 감각이 나를 영적 침체로 이끈다. 감각의 영역에서 이것은 사실(fact)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 지시고 살아나셔서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의인이라 칭하신다. 이것은 믿음의 영역에서 진리(truth)다. 만일 내 감각이 주장하는 것을 믿고 그것을 적는다면 사실(fact)에 근거한 일반 저널링이다. 하지만 성령님을 의지하여 절망스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믿고...

‘저널링(Journaling)’은 내 인생의 바이블이 될 수 있을까?

저널링의 기원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록으로 표현한 것이 로고스 곧 말씀이다. 신약 성경을 보면 그 다수가 사도 바울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쓴 서신서, 즉 편지다. 편지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깊은 내면의 생각을 기록한 저널링과 다르지 않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서, 빌립보서 등의 편지를 쓸 때 자신의 편지가 성경이 될 것을 감안해서 썼을까? 결코 아니다. 그순간 마음을 다해, 진심을 다해, 성령님이 주신 감동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을 뿐. 그 당시 그 편지는 쓴 사람에게도, 받아서 읽는 사람에게도 성경이 아니라 그냥 편지였다. 하지만 성령의 감동이 더하여졌을 때 그 편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로고스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교회사적 과정을 거쳐 정경(正經, the...

‘저널링(Journaling)’ 하시는 하나님

‘내면의 나’를 알아 갈 때 좋은 방법은 내면의 나에 자극을 주고 그 자극에 대한 반응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활동보다 중요한 것은 그 활동을 하게 하는 내면의 그 무엇이다. 그래서 자극으로 주어진 모든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 감정, 취향, 세계관, 가치관, 철학, 관점을 표현하고 기록하고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창 1:27) 하나님은 자신 안에 있는 것을 표현하려는 갈망을 갖고 계신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 역시 내면의 것을 표현하려는 갈망이 내재되어 있다. 저널링의 시초는 하나님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저널링(Journaling)’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적 귀소본능과 저널링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려는 본능이 있다. 애벌레는 나비가 되려는 본능이 있다. 도토리는 떡갈나무가 되려는 본능이 있다. 모든 생명은 이처럼 자기 자신이 되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한 개의 도토리 씨앗 안에는 수천수만 가지의 상황과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결국 떡갈나무가 되게 하는 놀라운 본능이 숨어 있는 것이다. 크리스천에게도 하나님이 심어 놓으신 이런 본능(Destiny)이 있다. 이 본능 안에는 ‘내면의 부르심(inner calling)’이 분명 존재한다. 모든 생명이 자기 자신이 되려는 본능이 있듯 이 내면의 부르심은 자기가 있어야 할 위치로 부른다. 연어는 바다로 나가 수년을 살다 때가 되면 내비게이션이나 지도도 없이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정확히 돌아와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저널링(Journaling)’이란 무엇인가?

저널링과 일기의 차이는 무엇인가? 크리스천 귀소본능 학교, 존고즈홈(JohnGoesHome)은 ‘저널링(Journaling)’을 강조한다. 이 생소한 단어를 처음 듣는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저널리즘, 저널리스트 이런 단어는 들어봤는데 저널링이란 단어는 생소하다는 거다. 인생의 여정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아주 간략히 설명해 드리면 일기(Diary)와 같은 것이 아닌가 되묻는다. 일기(Diary)와 저널링(Journaling) 모두 단어 자체에 어원적으로 ‘하루(日, Day), 날’의 의미를 포함한다. 즉 하루에 대한 기록과 관련 있다. 기록이란 형태로만 보면 일기와 저널링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굳이 일기라는 익숙한 용어 대신 저널링이란 단어를 사용하려는 이유는 뭘까? 일기에 내면 깊은 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