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하가 신앙고백

데일리하가(DailyHagah) 소개

데일리하가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신앙 고백을 알고 싶다면 아래를 참고하십시오.

1. 은혜

내 힘으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 그 지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고백했던 바울과 같이 절규하는 그 지점. 무엇을 아는 자 같았고, 무엇을 깨달은 자 같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처럼 생각했었지만, 나에게서 나온 그 어떤 것도 선하지 않음을 눈물없이는 고백할 수 없는 그 지점.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시작됩니다. 그 어떤 자격도 없는 자에게 아무 조건 없이, 값없이 구원을 선물로 주셨던 그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고서는 단 한 순간도 의로울 수 없음을 깨달은 진토(塵土)와 같은 자들의 믿음을 타고 오늘도 흐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 5:19)

하나님의 아들로서, 무엇이든 할 수 있으셨던 은혜의 근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고백하셨던 그 지점. 주님. 데일리하가의 모든 사역이 이 지점 위에 세워지길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모든 열심과 헌신이 나의 Nothing에서, 주님의 Everything에서 나오게 하소서.

2. 사랑

그저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릴 때는요. 어른이 되니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뒤에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어느 날. 은혜를 따라 난 길을 들어가니 그 근원에 측량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의 이해를 완전히 초월한 그 사랑 앞에 많이 웁니다. 어찌 나 같은 자에게 이런 사랑을 베푸시는가 해서요. 다시 그 길을 따라 나와 뒤돌아볼 때 비로소 그 길이 나를 위해 피와 물 쏟으셨던 상처 난 주님의 옆구리였다는 것을 봅니다. 나를 향한 아버지 사랑의 증거. 그 어떤 것도 죽음까지도 그리스도 예수의 상처 안에 있는 아버지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만물의 근원에 놓여 있는 아버지의 사랑에서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8~39)

주님. 데일리하가의 모든 일을 따라 들어간 그곳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만나게 하소서. 대의명분이 아닌, 양 아흔 아홉 마리가 남았어도 잃은 양 한 마리를 향해 가야만 했던 주님의 그 사랑이 이곳에 흐르게 하소서.

3. 흐름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신앙생활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주님의 생명을 내적으로 충만하게 채워가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생명의 흐름이 내면에서 이뤄집니다. 내 선호, 취향, 기질을 붙들던 자기 생명은 감소하고 실재(實在)하는 주님의 생명은 증가해야 합니다. 나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방향이고, 주님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이 사망을 삼키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방향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내적으로 충만하여 넘치기 시작한 주님의 생명을 외적으로 흘려보내 열매를 맺고 나누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생명의 흐름이 외면을 향합니다. 내 안으로 들어오신 주님의 생명은 이론이 아닌 실재입니다. 이 생명은 흐릅니다. 이 흐름이 닿는 곳마다 사망에 갇혔던 것이 풀어집니다. 이 흐름 앞에 자아가 항복할 때 생명은 성장합니다. 이것이 곧 성화요 건축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 7:38~39)

주님. 데일리하가의 모든 사역에 당신의 생명이 흐르게 하소서. 사역의 혈관을 타고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당신의 생명이 흐르게 하시고,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 13:13)

아버지 하나님. 당신은 모든 것의 근원입니다. 그 근원의 본체가 사랑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님. 당신은 그 어떤 누구도 다 알 수 없는 아버지 하나님을 말씀(the WORD)이 되어 나타내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은혜로 드러내셨습니다. 성령님. 당신은 만물 안에 감춰진 아버지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실제로 드러내 알게 하시는 생명의 교통이요 흐름입니다.

주님. 데일리하가의 모든 사역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게 하소서.

4. 진리

진리(眞理)의 헬라어 알레데이아감춰진 것이 드러난 상태를 뜻합니다. 옛 언약 아래에서 성막과 제물은 그림자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성막과 제물의 감춰진 실제(reality, 實際)를 드러내십니다. 성전이신 자신의 육체를 허물고 자신을 단번에 제물로 드려 영원한 만족을 이루심으로. 진리는 그림자 안에 감춰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만물은 다 주로 말미암고, 주를 위하여 창조되었으며(골 1:16), 만물은 모두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는지 감춰져 있습니다. 비밀입니다. 오직 성령의 계시를 통해서만 알게 되는. 그래서 계시의 원어와 진리의 원어는 같은 뜻을 갖고 있습니다. 만물의 헬라어 원문 타 판타(ta panta)는 ‘모든 것을 포함하면서 그 어떤 것도 예외일 수 없는 완전한 전체(to include everything and exclude nothing), 물리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포함하는 모든 것 (all things – the entire physical and spiritual universe)’으로 정의합니다. 즉, 만물은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이전의 것, 앞으로 생길 것, 물질적인 것, 영적인 것,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포함한 그 어떤 것도 빠져나갈 수 없는 전체를 뜻합니다. 당연히 내 삶도, 학업도, 일도, 그 어떤 것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이 만물 안에 만물을 붙들고 계신(히 1:3) 감춰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만물 안에 감춰진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며 추구하는 것. 그것이 진리에 대한 탐구입니다. 그 어떤 탁월한 사역일지라도 그 안에 감춰진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데 실패한다면 그 사역은 진리에서 벗어난 겁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

주님. 데일리하가의 모든 사역이 영 안에, 진리 안에 있게 하소서. 사역의 모든 것이 감춰진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가리키게 하소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그 아무리 탁월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지 않으면 실패라는 것을 깨닫게 하소서.

5. 기름부음

기름부음은 주님의 생명의 속성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그 생명의 본질입니다. 감람열매를 압착 틀에 짜면 그 열매의 생명의 본질(spirit)인 감람기름을 얻습니다. 그 이전까지 이 생명의 본질을 경험할 수 없었지만 기름을 얻는 순간 그 생명을 맛보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름부음은 경험과 긴밀한 연관이 있습니다. 메시아. 그리스도. 둘 다 ‘기름부음’의 뜻을 포함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기름부음’을 빼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 기름부음이 1) 하나님을 향해서는 구별로 나타납니다. 똑같은 그릇이지만 기름을 바르면 하나님의 성물로 구별됩니다. 이 구별은 ‘특별함’을 나타냅니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기름을 부으면 왕, 제사장, 선지자로 하나님 앞에 구별됩니다. 구별된 사람이 하나님의 직임을 감당합니다. 기름부음이 2) 자기 자신을 향해서는 가르침으로 나타납니다(요일 2:20, 27). 성령의 기름부음은 계시를 갖고 오고, 그 계시는 깨달을 수 없었던 영의 영역을 알게 합니다. 기름부음이 3) 다른 사람을 향해서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눅 4:18). 많은 사람이 ‘기름부음’이란 단어를 들으면 초자연적 신비한 능력을 먼저 떠올리지만, 이것은 기름부음을 통한 구별과 깨달음(가르침)이 충만한 결과여야 합니다. 가장 소중한 것은 주님을 향한 구별이요 그다음은 영으로 말미암아 아는 것이고, 그다음이 그 계시 위에서 생명의 능력을 흘려보내는 겁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 2:27)

주님. 데일리하가의 모든 사역이 당신의 기름부음 가운데 있게 하소서. 주님을 향하여 구별되게 하시고, 관계를 통해 계시로 아는 것을 행하게 하시고, 다른 사람을 향하여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6. 균형

선한지, 악한지. 맞는지, 틀리는지. 예인지, 아니오인지. 성(聖)인지, 속(俗)인지. 사람은 이런 이분법적 구분을 좋아합니다. 이 구분에 따라 편을 가릅니다. 논리를 구성하고 판단하고 각자의 입장 위에 견고하게 섭니다. 하지만 이 견고함 위에 생명은 흐르지 않습니다. 선악과에는 악(惡)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선(善)도 함께 있었습니다. 선한 것에만 집착할 때 생명은 놓칠 수 있습니다. ‘선’의 기준을 놓친 까닭입니다. 율법이 바로 그런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빛만 추구하고, 어둠은 배척하는 틀에 갇히면 어둠과 빛을 함께 묶어 ‘하루’를 구성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놓칠 수 있습니다. 맞다, 틀리다를 넘어서는 것이 생명의 원칙이요 그 바탕엔 십자가를 동반한 사랑이 있습니다. 선악의 논리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시아버지의 아들을 낳은 다말과 여리고성의 창기 라합과 이스라엘이 경멸했던 모압 여인 룻 그리고 다윗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밧세바가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있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이것이 선악을 넘어선 사랑과 생명에 근거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맞다 틀리다’를 고집하는 나에게 선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오는 모든 것이 악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악함을 알면서도 자신의 생명을 바쳐 그 악함과 하나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해 선악의 논리를 초월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결국 죽음과 어둠과 악을 이깁니다. 그 어떤 좋은 것도 한쪽으로 치우쳐 균형을 잃는 순간 생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만 치우쳐도 안 되고, 말씀으로만 치우쳐도 안 되는 이유입니다. 분별은 자신의 죽음 위에 역사하는 생명에 기인해야 합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 11:30)
The fruit of the righteous is a tree of life, and he who wins souls is wise. (NIV)

주님. 데일리하가의 모든 사역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소서. 선악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게 하소서. 대의명분의 늪에 빠져 생명을 놓치는 일이 없게 하소서.

7. 부르심

부르심(Calling)과 소명(召命, Vocation)의 어원은 모두 소리(Voice)입니다. 소명은 내가 추구해야 할 어떤 목표가 아닌, 내면에서 부르는 소리입니다. 소명은 의지에서 나오지 않고, 듣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아기가 성장하면 부모의 소리를 듣고 이해하고 반응하고 순종합니다. 신앙도 성장함에 따라 세상의 소리에 반응하며 살던 시기에서 깊고 은밀한 곳에서 속삭이는 주님의 소리에 반응하는 시기로 넘어가야 합니다. 소명은 노력해서 얻게 되는 성취의 대상이 아닌,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때 깨닫게 되는 이미 주어진 선물입니다. 이 깨달음을 다른 말로 사명(使命, Mission) 혹은 존재이유(存在理由)라고 합니다. 전 세계 인구가 70억 명을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이중 동일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히 고유합니다. 부르심은, 각 사람의 자기다움은, 결코 비교의 영역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신 나만의 직임을 감당하는 것은 라이센스(license)에 있지 않습니다. 그 직임에 대한 주님의 기름부음과 부르심에 대한 확신에 있습니다. 미션(Mission)을 깨달은 자가 진정한 미셔너리(Missionary)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1:17~19)

주님. 데일리하가의 모든 사역이 당신의 기름부음과 부르심 위에 서게 하소서. 데일리하가를 통해 미션(Mission)을 깨달은 자가 자기가 속한 전문 영역의 진정한 미셔너리(Missionary)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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