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03 저녁] 복음은 예루살렘이 아닌 스불론에서 시작됩니다

[

HAGAH of the Week

창세기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The LORD was with Joseph,
so he became a successful man. (NASB)

HAGAH of the Day

마태복음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복음은 예루살렘이 아닌 스불론에서 시작됩니다

스불론. 레아가 낳은 여섯 번째 아들이자 야곱의 열 번째 아들입니다. 시간이 지나 스불론이란 대명사는 스불론 지파를 뜻하기도 하고, 스불론 지파에 할당된 땅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레위, 유다, 요셉과 같은 사람은 잘 알지만, 상대적으로 스불론에 관해서는 잘 모릅니다. 요셉이 좀 특별하고 유명하다면 상대적으로 스불론은 평범합니다. 열두 명이나 되는 아들이 있는 집에서 열 번째 아들은 주목을 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지역적으로도 예루살렘은 유명하지만, 스불론 땅은 평범합니다. 이렇게 평범한 스불론을 향한 하나님의 원형적(原型的) 마음은 ‘후한 선물’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창 30:20)
Then Leah said, “God has endowed me with a good gift; now my husband will dwell with me, because I have borne him six sons.” So she named him Zebulun. (NASB)

레아는 남편 야곱이 자기와 함께 해주기를 늘 갈망했습니다. 그래서 여섯 번째 아들을 낳은 후 스불론이 남편 야곱으로 하여금 자신과 함께 거주하며, 함께 살게 할 소중한 선물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스불론’의 히브리어는 ‘제불룬’. 스불론을 향한 레아의 고백이 담긴 창세기 30:20에는 ‘제불룬’과 어원을 같이 하는 두 개의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후한 ‘선물’을 뜻하는 히브리어 ‘제베드’고, 또 하나는 함께 ‘살리라’를 뜻하는 히브리어 ‘자발’입니다. 즉, 스불론의 이름은 ‘선물’과 ‘함께 함’의 염원을 담은 단어로 지은 이름입니다. 히브리어 ‘제불룬’의 어근은 높이다(to exalt), 존경하다(to honor)란 의미를 지닌 ‘자발’이란 동사입니다. 이 ‘제불룬’의 어근 ‘자발’은 창세기 30:20에서 ‘함께 살리라’에 등장합니다. ‘자발’의 핵심 의미는 ‘높이고, 존경하는 것’인데 왜 ‘함께 사는 것’이란 뜻이 나왔을까요?

‘자발’이란 단어를 NIV는 ‘존귀히 여기다’로 번역합니다.

그때 레아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소중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번에 내 남편은 나를 존귀히 여길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아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이름을 스불론이라 했습니다. (창 30:20, NIV 번역)
Then Leah said, “God has presented me with a precious gift. This time my husband will treat me with honor, because I have borne him six sons.” So she named him Zebulun. (NIV)

‘높이고, 존귀히 여기고, 소중히 여기는 것’의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일까요? 함께 하는 것입니다. 개는 충성의 대명사입니다. 오랫동안 주인과 함께 했던 개가 주인이 아파 병석에 누워 있을 때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주인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볼 때 감동을 받습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개는 주인을 높이고, 존귀히 여기고,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 곁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 단어가 바로 ‘자발’입니다.

이름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스불론의 히브리어인 ‘제불룬’과 동일한 어근(자발)을 사용하는 히브리어 ‘제불’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처소’란 뜻으로 사용됩니다.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제불, habitation)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 (사 63:15)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제불, dwelling)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하고 (왕상 8:13)
I have surely built thee an house to dwell in, a settled place for thee to abide in for ever. (KJV)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선물’의 히브리어는 ‘제베드’. ‘제베드’의 어근은 동사 ‘자바드’인데, 이 ‘자바드’가 ‘주시도다’에도 사용됐습니다. 즉,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는 마치 ‘give a gift’처럼 같은 어근을 가진 단어를 반복한 문장입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주는 선물은 마음이 같이 갑니다. 선물을 준 순간 그 사람과 마음이 함께 합니다.

정리하면, 스불론이란 이름의 원형적 의미는 ‘선물’과 ‘함께 함’인데 그냥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배우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것 같은 사랑과 소중한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에 눈이 먼 연인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함께 함이 최고의 선물입니다. 레아에게 스불론은 그런 소망을 담은 이름이었습니다.

레아는 남편 야곱에게 사랑받고 싶은 근시안적 관점으로 스불론이란 이름을 지었습니다. 레아는 이 이름이 예수님 때에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른 채 스불론이라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은 레아가 어떤 마음으로 스불론이란 이름을 지었는지 아셨고 그 이름을 통해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선물과 같은 소중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으셨습니다.

야곱이 죽기 전 자기 아들들을 향해 축복합니다. 이때 스불론을 향해 이렇게 예언합니다.

스불론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창 49:13)

그리고 이 예언은 450년 후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땅을 분배받을 때 이뤄집니다. 스불론은 갈릴리부터 지중해까지 매우 광활한 지역입니다. 하지만 이사야의 예언에 의하면 이 지역은 멸시를 당하던 땅입니다.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사 9:1~2)

사람들은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을 소중하게 생각했지만 스불론 지역에 속한 갈릴리는 사람들이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예언을 통해 이 멸시를 당하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고 730여 년이 지나 예수님의 삶을 통해 예언이 성취됩니다.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마 4:13~16)

야곱이 죽기 전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갈릴리 해변은 너무나 평범하여 무시의 대상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스불론 지역에 속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할 정도였습니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요 1:46)

하지만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이곳을 복음을 선포하는 지역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처럼 빛이신 주님이 스불론 땅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들에게 빛을 비추셨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스불론 땅을 선택하셨고 이것을 통해 이사야의 예언이 이뤄졌음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비로소’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음을 알립니다.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마 4:13~17)

복음 선포가 시작된 곳이 어디입니까?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소홀히 여기던 스불론입니다. 복음을 경험하기 시작한 곳이 어디입니까? 가장 평범하여 사람들이 무시하던 스불론입니다. 예수님은 배 매는 해변 스불론 지역에서 어부 일을 하던 사람들을 중요한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예루살렘 출신이 아니라 스불론 출신이 복음 전파의 주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유명한 바울, 베드로, 다윗과 같은 사람을 성경의 중요 인물로 떠올리지만 정작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의 순간에는 이 세상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세 명의 마리아가 함께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임마누엘이신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님의 이 함께 하심을 예루살렘과 같이 아주 특별한 곳에서 경험하려 합니다. 물론 주님은 아주 특별한 순간, 특별한 곳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설거지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가고, 컴퓨터로 일하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너무나 평범하여 과연 여기 주님이 계실까 생각하는 내 삶의 스불론과 같은 곳에서부터 복음을 선포하기 원하십니다. 가장 사소한 영역에서 주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특별한 순간에 경험하는 주님의 함께 하심은 금세 잊힙니다. 복음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사소하여 자신도 주목하지 않던 영역에서부터 주님을 경험하기 시작해야 복음이 진짜 내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너무나 사소한 곳에서 주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할 때 비로소 그 지점이 ‘후한 선물’이요 ‘함께 하심’의 상징인 스불론임을 깨닫습니다. 가정을 ‘살리는 것’은 특별한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하여 무시되기 쉬운 일상의 ‘살림’에서 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대의명분을 붙들고 눈에 띄는 큰 사람을 섬기는 것보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에 마음을 다하고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주께 대하듯 하는 것에서 청지기의 삶은 시작됩니다. 주님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스불론 땅 갈릴리에 주로 계셨음을 기억하십시오. 평범한 땅 스불론과 같은 나의 일상에 언제나 함께 하시며 기쁜 소식을 전하고 계시는 주님께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경험하고 감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래의 막연한 어떤 때가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함께 하고 계신 주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스불론의 어근 ‘자발’은 ‘존귀히 여기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많은 주변 사람들이 존경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곤경에 빠지게 됐습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입술로 존경한다고 말하던 사람들은 온데 간데 없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다가와 아무 말 없이 오랜 시간을 함께 해줍니다. 얼마나 큰 위로와 큰 힘이 됐을까요. 이 친구야말로 이 사람을 가장 존귀히 여긴 것입니다. 정말로 소중하고 존귀히 여긴다면(자발) 함께 하는 것(스불론-제불룬)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그 사람에게 소중한 선물(스불론-제불룬)입니다. 노예로 팔린 요셉과 같이 가장 절망적인 순간(스불론, 이사야 9:1)에, 모두가 떠나고 아무도 남지 않은 바닥과 같은 그 자리에, 자신을 친구라고 말씀하셨던 임마누엘이신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심(스불론-제불룬)을 깨달을 때 주님이 내 인생 최고의 소중한 선물(스불론-제불룬)이요 성공임을 알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 15:15)

임마누엘이신 주님은 너무나 평범하여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던,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던 스불론과 같았습니다.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 53:2~3)

하지만 내 절망의 자리에도, 가장 사소한 영역에도 언제나 함께 하시는 주님은 스불론과 같이 두 마음을 품지 않는 친구입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언제나 내 곁에 계시고,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이신 예수님. 얼마나 소중합니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얼마나 귀하고 감사합니까.

스불론 중에서 모든 무기를 가지고 전열을 갖추고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능히 진영에 나아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오만 명이요 (대상 12:33)

임마누엘 주님이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스불론) 최고의 선물(스불론)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 4:10)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매일 우물을 긷는 것과 같은 가장 사소하고, 가장 평범한 순간에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에게 숨기고 싶은 가장 아프고, 가장 절망적인 그 자리에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심(스불론)을 깨달을 때 주님이 하나님의 선물(스불론)임을 깨닫습니다.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스불론과 같은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돼야 합니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합시다.

연한 순과 같은 나의 소중한 친구, 나의 주님. 영원토록 나를 향해 두 마음을 품지 않으시는 주님. 비둘기와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내가 너와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시는 주님. 내 모든 일상을 함께 공유하기 원하시는 주님. 내가 원하는 순간에만 주님의 함께 하심을 찾으려 했던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너무나 사소하여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는가 싶은 그 지점에 나사렛 예수가 함께 하고 계셨음을 깨닫게 하소서.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을 긷는 일상에서 주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한 것처럼, 스불론 해변에서 일상을 살아내던 어부들이 주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한 것처럼 나의 가장 사소한 순간들에 함께 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친구를 위해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방법은
대신 죽어주는 것입니다.

The greatest way
to show love for friends
is to die for them.

– 요한복음 15:13 CEV 번역 (John 15:13,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

배경음악 작곡/연주 : 곽은기 / 제목 : 일상 / Release : 20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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