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나를 읽게 해야 합니다

말씀에서 생명을 길어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로 말씀을 읽고,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글자가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을 머금은 영이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성경의 글자를 눈으로 읽고 머리로 생각하는 활동으로는 결코 글자의 표피가 깨져야 새어 나오는 하나님의 생명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기도로 말씀을 읽을 때 글자의 단단한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합니다. 그때가 말씀 안에 있는 영과 생명이 풀려나는 시점입니다. 이렇게 풀리는 영과 생명을 나의 것으로 취하는 방법은 바로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의식하지 않으면 눈과 머리로 말씀을 읽으려 합니다. 눈과 머리로 말씀을 읽는 것은 인간의 천연적 감각을 사용하는 것이지 영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 안에 있는 생명에 닿으려면 의식적으로 영을 사용하여 말씀을 읽으려는 믿음과 태도를 첫 번째로 삼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를 하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는 내가 영적인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 그리고 내가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내주하고 계신 성령님이 나의 영을 사용하여 교제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러려면 말씀을 읽는 주도권이 ‘나’여선 안됩니다. 내가 말씀을 읽는 주체가 되면 내 인식과 경험의 틀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내가 듣고, 취하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기도로 대화하기 위해 읽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신다는 고백을 합니다. 주님이 내 삶의 주도권을 갖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내가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읽게 해야 합니다. 내가 말씀을 읽을 때 나의 기대와 나의 원함이 있습니다. 말씀이 나를 읽게 한다는 것은 주님이 말씀을 통해 내게 전달하고 싶은 기대와 원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교제와 대화는 결코 일방적일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고, 상대방의 얘기를 진심으로 들으려는 태도가 첫 번째여야 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의 결을 살피고 그 마음과 하나가 되려 할 때 진정한 교제가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내가 말씀을 읽었다면, 이제 말씀이 나를 읽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내가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이 나를 읽기 원하는 태도의 변화는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이런 믿음의 고백을 끌어냅니다.

주님.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겠습니다. 주님. 제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제 생각과 경험과 좁디좁은 모든 관점도 전부 내려놓습니다. 내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내 모든 동기를 살피시고, 내 숨은 것까지 들추시사 어느 하나 주 앞에 감춰진 것이 없게 하소서. 내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드리오니 말씀이신 주님, 저를 읽으소서. 그리고 말씀으로 저를 깨우치소서. 말씀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태도를 버립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 한 분 얻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과 마주 보기 원합니다.

말씀이 나를 읽게 하려면 ‘말씀이 곧 인격’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일방적으로 말씀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일방적으로 요리해서 필요한 것만 취할 객관적 대상이 결코 아닙니다. 교제를 원하고, 관계를 원하고, 대화를 원하는 너무나 실제적인 인격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말씀이 나를 읽게 열어 드릴 수 있습니다. 말씀에서 지식이 아닌 생명을 취하려면 말씀을 글자가 아닌 인격으로 대해야 합니다. 이 관점의 변화는 말씀 읽기의 중요한 전환점을 갖고 올 것입니다.

신앙의 성장 단계에서 말씀과 흠뻑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는 때가 있습니다. 말씀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깨닫는 기쁨이 너무 크고 달고 오묘해서 말씀을 더 알고 싶어 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의 절정에 이를 때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성경 66권 한 권 한 권을 주석으로 공부하고 싶다. 신학을 공부하고 싶다. 성경을 마스터하고 싶다.

내가 성경을 마스터하는 것이 결코 목표가 되어선 안 됩니다. 성경이 나를 마스터하게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깨닫고 감동하고 결단한 것으로 변화되었습니까? 변화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합니다. 내가 말씀을 읽으려는 태도로는 온전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씀 속에서 생명을 취하지 않고 지식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나를 읽게 하십시오. 머리와 가슴으로 깨닫고 느끼는 것을 멈추란 얘기가 아닙니다. 머리와 가슴으로 깨닫고 느낀 것에 멈추지 말고 그것을 영으로 내리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 영으로 내리는 작업이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나를 읽게 한다는 것은 말씀을 생명으로 인식하고 그 생명이 내 죽을 것을 삼키기를 갈망하는 태도입니다.

고린도후서 5:4
우리가 이 육신의 장막 안에 머무는 동안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탄식합니다. 우리는 이 육신의 장막을 벗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늘의 장막으로 덧입고 싶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명에 의해 삼켜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NIV 번역)

For while we are in this tent, we groan and are burdened, because we do not wish to be unclothed but to be clothed with our heavenly dwelling, so that what is mortal may be swallowed up by life. (NIV)

만일 성경을
매일 읽지 못할 정도로
너무 바쁘다면
당신은
인생을 설계하신
전능하신 하나님보다도
더 바쁜 것입니다.

If you are too busy
to read the Bible
every day
you are busier than
Almighty God
ever intended
any human being
should be.

– D. L. 무디(D. L. Mood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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