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한 시간을 갖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묵상’이다

나를 알려면 하나님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려면 계시가 필요하다. 계시가 있으려면 잠잠한 시간이 필요하다. 잠잠한 시간을 갖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가만히 있으라(be still)’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주신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묵상’이다.

1. 묵상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이다

모세가 죽고 그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천 명의 인원을 이끌고 수련회를 가도 어려운데 장정만 육십만 명인 이스라엘 백성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했다. 심리적 압박이 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이 가나안으로 들어갈 비책을 말씀하시거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신 것이 아니다. 강하고 담대하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시지만 강하고 담대할 만한 자원을 공급해 주신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달랐다.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한 하나님의 비법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것이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8)

여호수아 1장 8절은 가나안 땅을 앞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히브리서 3:17~18)

히브리서 3장과 4장은 구약의 말씀을 재해석하면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곧 ‘안식’에 들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브리서 4:11)

히브리서 4장 11절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주장한다. 히브리서 주장에 의하면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것이 곧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것이다. ‘안식’과 ‘가만히 있는 것’은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안식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할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 묵상이 바로 가나안 즉 안식으로 들어가기 위한 하나님의 핵심 전략이다. 묵상을 통해 안식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히브리서 4장 11절 다음 구절에 안식에 들어간 결과가 나온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4:12~13)

묵상을 통해 가나안 즉 안식에 들어가면 살아 있고 활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한다. 그 말씀은 혼과 영을 찔러 쪼갠다.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할 만한 말씀의 빛이 임한다. 그 안식 가운데 비춰진 계시의 빛은 우리로 ‘하나님 됨을 알게’ 한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46: 10)

2. 묵상(meditation)은 심령의 약(medicine)이다

묵상을 의미하는 meditation(메디테이션)과 약을 뜻하는 medicine(메디씬)은 같은 어원이다. 피부에 상처가 생길 때 상처를 아물게 하는 연고를 바르듯, 묵상을 통해 말씀을 내 심령에 바를 때 그 말씀이 스며들어 내 상처를 치료한다. medicine이 몸의 약이라면, meditation은 영혼의 약이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마르페)이 됨이니라 (잠언 4:20~22)
For they are life unto those that find them and medicine to all their flesh.(Jubilee Bible 2000)

잠언 4장 22절은 말씀에 주의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떠나게 하지 말며 말씀을 마음 속에 지키고 말씀을 얻는 자에게 그것이 곧 건강이 된다고 설명한다. JB 2000 버전은 ‘건강’을 ‘medicine’으로 번역했다. 이 구절에서 ‘건강’의 히브리어는 ‘마르페’다. 마르페를 또 다른 구절에서는 양약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마르페)과 같으니라 (잠언 12:18)

3. 묵상은 믿음을 가져온다

의지적인 믿음은 오래가지 못한다. 변화를 일으키는 믿음은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17)
Consequently, faith comes from hearing the message, and the message is heard through the word of Christ. (NIV)

믿음은 내가 의지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어 버전은 ‘믿음은 오는 것(Faith Comes From…)’이라고 번역했다.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말씀 앞에 자복하며 큰 감동을 받을 때 믿음은 ‘들어 오는 것’이다. 어디서 오나? 바울은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온다.

예수님은 말씀 그 자체다. 히브리서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라고 설명한다. 이 부분을 헬라어 원어로 확대 해석하면, 믿음의 ‘시작’이요 ‘끝’이신 예수를 바라보자…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믿음의 시작이요 끝이자 믿음의 원천이다. 이 말씀이신 주님이 내 심령을 터치할 때 말씀과 함께 믿음이 들어 오는 것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2 上)

앞서 살펴봤던 잠언 4장 20절 말씀을 보면 ‘내 말에 주의하며’란 표현이 나온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카샤브)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잠언 4:20)
My son, pay attention to what I say; listen closely to my words. (NIV)

주의한다는 것은 집중하여 관심을 기울이는 것(pay attention to)이다. 관심을 기울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그 대상의 숨겨진 마음마저 알게 된다. 그래서 ‘주의하다’의 히브리어 ‘카샤브’에는 ‘주의하다’란 의미 외에 ‘귀를 기울여 듣다’란 의미도 있다. 시편 10편 17절 말씀은 ‘카샤브’를 ‘듣다’로 번역한다.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카샤브) (시편 10:17)

묵상은 말씀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카샤브, pay attention to)이다. 말씀에 깊은 관심을 기울일 때 말씀 이면 심연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다. 말씀을 통해 영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때 믿음이 들어온다. 이 믿음을 가지고 오는 것이 바로 ‘계시’다.

4. 묵상은 ‘영의 생각’을 돕는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영적 존재’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9)


‘영적’이란 말을 들으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경건한 사람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것은 ‘영적’인 것의 결과일 뿐이다. ‘영적’이란 말은 삶의 주도권과 관련 있다. 영적인 것은 내 생각, 이성, 감성, 의지, 경험이 삶의 주도권을 갖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내주하는 그리스도의 영이 삶의 주도권을 갖는 것이 ‘영적’이다. 다른 말로 얘기하면, 어떤 일이 닥쳤을 때 내 감정이 즉각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주하는 영에 의해 감정이 통제되어 반응하게 될 때 그것이 바로 ‘영적’인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티코스’는 ‘영에 의해 통제되어지는(spirit-controlled)’으로 번역할 수 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에 대해 얘기한다. 내주하는 영을 따를 때(영적일 때) 영의 일을 생각한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로마서 8:5~7)

생각은 감정과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감정과 태도는 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행동의 반복이 내 삶을 결정한다. 삶을 바꾸려면 결국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 생각에는 육신의 생각이 있고, 영의 생각이 있다. 육신의 생각으로 살아갈지, 영의 생각으로 살아갈지는 내가 선택해야 한다. 영의 생각은 영에서 온다. 영과 연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영은 지성소에 상응한다. 안식의 영역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안식이 곧 가나안 땅임을 알려준다. 영과 연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묵상이다. 가나안 땅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알려주신 비법이 바로 묵상이었다. 말씀을 주야로 입에서 떠나지 않게 중얼거릴 때 영의 생각이 흘러나온다.

주님은 여호수아에게 칼 사용법을 알려주신 것이 아니다.
대신 어떻게 주님을 주야로 묵상할지,
그 결과 어떤 위대한 성공을 거둘 것인지에 대해 알려주셨다.

The Lord didn’t show Joshua how to use the sword,
but He told him how he should meditate on the Lord day and night,
and then he would have good success.

– D.L. 무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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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 jung a
Ha jung a
16 hours ago

하나님 아버지
육신의 생각이 아닌 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듣기 원합니다.
세상과 죄에 가려진 모든 것들이 거듭남으로 성령님이 내주하셔서
모든 것들을 들음으로 알고 깨닫게 되길 기도합니다.
매일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여 세상과 죄와 어둠의 영을 물리치고
날마다 주님 안에서 화평하고 평안하게 하옵소서
에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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