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매오 DAY 3 – 결과를 가져오는 믿음은 무엇인가?

HAGAH OF THE LESSON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마가복음 10:52)

DAY 3

[바디매오] 결과를 가져오는 믿음은 무엇인가?

소경 바디매오의 눈을 고치신,
절박한 자의 간청에 응답하신,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신,
기적(miracle)의 주인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도 우리 곁을 지나고 계신다.
소경 바디매오의 곁을 지나셨던 것처럼.
예수님을 멈춰 세우고
결과를 가져온 ‘믿음’은 무엇인가?
무엇이 결과를 가져오는가?

마가복음 10:46~50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 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 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시간(時間). 헬라어로 두 가지가 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는 물리적인 시간은 크로노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시간이다. 반면 카이로스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결정적 시간을 뜻한다. 아이를 임신한 후 흘러가는 열 달의 시간이 크로노스라면 첫 아이를 출산하여 눈과 눈을 마주하는 그 순간은 카이로스다. 출산의 시간이라 해서 물리적으로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속에 그 순간은 평생의 기억에 남는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요한복음 7: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카이로스)가 아직  차지 (플레로오)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는 십자가의 순간을 의미한다. 헬라어로는 ‘카이로스’로 기록되어 있다. 모든 시간(크로노스)은 동일하나 구원의 길을 낸 십자가의 순간(카이로스)은 전 인류에게 특별하다. 온도가 가득 차 임계점을 넘어야 물이 끓듯, 크로노스의 시간이 임계점까지 가득 차야지만(full, 헬라어로는 ‘플레로오’) 카이로스의 때가 이른다. 예수님이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은 크로노스의 축적과 카이로스의 도래가 관련 있음을 암시한다.

크로노스는 모두에게 공평하나 카이로스는 대체로 감춰져 있다. 카이로스는 크로노스의 축적이 이뤄지는 어느 순간에 임하기에 ‘우연’처럼 나타난다.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로 향하는 아브라함. 크로노스의 시간은 흘러가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곧 번제로 드려야 한다. 이삭을 제물로 드릴지라도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실 것을 아브라함은 마음 중심으로 믿었다. 그 믿음은 손을 내밀어 칼을 잡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축적되어 왔고, 카이로스의 순간은 다가오고 있다.

창세기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이삭의 코끝에 죽음이 다가온 순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멈추게 하셨다. 그리고 예비하신 숫양을 발견하게 하신다.

카이로스가 크로노스의 갈등과 위기를 거친 후에야 탄생하듯, 하나님으로부터 온 믿음 역시 시험과 연단이라는 갈등을 거친 후에야 그 믿음의 결과가 나타난다. 모리아 산 정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갈등과 위기가 있었고 그 견딤 위에 “여호와 이레”라는 카이로스의 순간이 도래했다.

무엇이 결과를 가져오는가? 무엇이 카이로스를 가져오는가?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

크로노스의 축적이 카이로스를 가져오듯, 믿음의 크로노스적 축적이 카이로스적 믿음을 낳고 결과를 가져온다.

구원이란 카이로스는 카이로스적 믿음의 결과이고, 카이로스적 믿음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 쌓인 크로노스적 믿음의 산출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숫양을 예비하셨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예비하셨다.

숫양은 이미 산 건너편에 준비되어 있었다. 보이지 않았을 뿐. “믿었으므로 말하였다”와 같이, 아브라함은 마음 중심으로 믿었기에 그 믿음이 칼로 아들을 죽이려는 행동으로 표현되었다. 행동으로 표현된 그 믿음. 바로 그 믿음이 프로토콜의 스위치를 작동시키자 보이지 않는 곳에 예비되어 있던 카이로스의 실체 숫양이란 결과가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기적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보이지 않았을 뿐. “믿었으므로 말하였다”와 같이, 바디매오는 마음 중심으로 믿었기에 그 믿음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로 표현되었다. 행동으로 표현된 그 믿음. 바로 그 믿음이 프로토콜의 스위치를 작동시키자 보이지 않는 곳에 예비되어 있던 카이로스의 실체 기적이란 결과가 나타났다.

주님은 사복음서에서 “믿음이 없다, 적다, 크다”란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다. 주님이 보시기에 믿음은 분량이 있음에 틀림이 없고, 분량이라 함은 축적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때가 차야 카이로스가 도래하듯, 믿음이 축적되고 차야(플레로오) 결과를 가져오는 카이로스적 믿음이 도래한다.

예수님이 바디매오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디매오에게서 결과를 가져오는 믿음을 보셨단 의미다. 예수님이 멈춰 서시고 그 믿음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바디매오에게서 믿음의 축적이 이뤄져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말씀 안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간극을 메우는 상상을 해보자. 이 상상은 예수님이 바디매오 안에 쌓인 믿음을 보셨을 것이란 가설에 근거한다.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바디매오는 새해를 맞이하여 자신의 비참한 신세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40일 작정 기도를 했다. 바디매오는 자신의 마음 중심을 살폈고, 그 믿음은 진실했으며 간절했다. 40일 작정 기도가 마무리된 후 바디매오는 어떤 결과가 도래하기를 바랐다. 자신의 두 손을 두 눈 위에 올린 후 치유가 일어날 것을 선포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디매오는 실망했다. 그리고 인생이 그러하듯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다.
어느 날 거리 속 랍비의 메시지를 듣게 된 바디매오는 흥분한 채 하나님은 나 같은 맹인에게도 관심을 두고 기적을 일으키실 것이란 믿음이 들어와 다시 새롭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매일 믿음으로 기도했지만, 뜨거운 가슴이 식을 무렵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실망하고 좌절했다. 믿음이 간절할수록 바디매오의 가슴 속 상처 역시 커져만 갔다.
하지만 그 어떤 믿음의 시련에도, 바디매오는 말씀을 통해 다윗의 자손 가운데 메시아가 오실 것과 그 메시아가 자신의 두 눈도 뜨게 해주실 것이란 믿음을 굳게 붙잡았다. 믿음이 연단을 거치며 또 다른 믿음에 이르렀다. 믿음이 축적될 즈음 바디매오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된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그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 이 근방을 지나신다는 소식을 듣는다. 바디매오는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바디매오는 소리쳤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많은 사람이 그를 꾸짖었다. 여러 번 믿음의 실패를 경험한 바디매오. 또다시 믿음이 갈등과 위기를 만난다. 하지만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수 있는 순간이란 생각에 바디매오는 더 큰 목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침으로 위기를 돌파한다. 바디매오의 믿음이 예수님을 멈춰 서게 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 안에 있는 믿음을 보셨다. 수많은 믿음의 실패가 쌓여 예수님이 볼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크로노스가 카이로스를 만나는 순간이다 .
마가복음에서 바디매오의 기록은 여기에만 등장한다. 하지만 이 기적의 기록 이전 바디매오의 삶에 실패와 좌절을 겪은 크로노스적 믿음의 축적이 있지 않았을까? 예수님이 바디매오의 옆을 지나가시는 카이로스의 순간은 어쩌면 바디매오가 주님 앞에서 믿음의 씨름을 벌이며 쌓았던 크로노스의 임계점은 아니었을까?

간절하게 믿음을 담아 기도를 했으나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기도의 응답은 언제 이뤄지는가? 이 말은 카이로스의 순간은 언제 임하는가와 관련 있는 질문이다.

사도행전 1:7~8
7. 이르시되  때(크로노스)  시기(카이로스) 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엑수시아)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부활 후 승천을 앞두고 이전과 완전히 차원이 다른 새로운 ‘카이로스’의 시대를 열 성령 도래의 사건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고. 즉,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아버지의 권한 아래 있다는 얘기다. 백이십 명의 제자들이 한곳에 모여 기도를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언제 기도의 응답이 이뤄졌는가? 우리는 이미 일어난 일이기에 말씀을 통해 그날이 오순절이었음을 알고 있지만, 그 당시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기도를 쌓던 ‘어느 순간’이다. 때와 시기를 알면 갈등할 이유도 실망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기도 응답이 더디 이루어져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기를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와 시기는 아버지의 권한 아래 있다.

믿는 자가 알아야 할 것은, 하늘로부터 온 믿음은 반드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과 때와 시기는 아버지의 권한 아래 있기에 믿음 위에 서서 경주(크로노스의 축적)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갈 때 그 산 건너편에 숫양이 함께 걸어 올라오고 있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가슴 졸이지 않았을 것이다. 갈등과 위기를 거쳐 손으로 칼을 잡아 이삭을 죽이려는 그 클라이맥스까지 믿음의 경주(크로노스)를 멈추지 않던 ‘어느 순간’, 숫양(카이로스)을 만나는 것이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는(크로노스) 어느 순간(카이로스) 주님은 응답하실 것이다. 주님은 이런 원리를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셨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는 크로노스의 믿음을 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주님이 돌아오실 때 “이런 믿음을 가진 자를 볼 수 있을까”라고 물으실 정도다.

누가복음 18:1, 7~8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8절 Living Bible 번역 : 그렇다! 그는 그들에게 빨리 응답하실 것이다! 하지만 질문은 이것이다: “나, 메시아가 돌아올 때, 나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믿음을 유지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발견할 수 있을까?
Yes! He will answer them quickly! But the question is: When I, the Messiah, return, how many will I find who have faith and are praying*?” (Living Bible)

모든 믿음이 결과를 가져오는가? 결과를 가져오는 믿음은 무엇인가?

 때는 차야 하고, 기도는 쌓여야 하며, 믿음은 축적되어야 한다 . 때와 시기는 아버지의 권한 아래 있다.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며 믿음 위에 서 있는 ‘어느 순간’에 ‘여호와 이레’를 만날 것이다. 바디매오 안에 쌓인 믿음을 보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던 주님은 여전히 우리 곁을 지나고 계신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 히브리서 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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