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매오 DAY 2 – 무엇이 예수님을 멈춰 세우는가?

HAGAH OF THE LESSON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마가복음 10:52)

DAY 2

[바디매오] 무엇이 예수님을 멈춰 세우는가?

소경 바디매오의 눈을 고치신,
절박한 자의 간청에 응답하신,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신,
기적(miracle)의 주인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도 우리 곁을 지나고 계신다.
소경 바디매오의 곁을 지나셨던 것처럼.
절박한 자에게 기적을 일으키셨던
예수님을 멈춰 세운 것은
‘무엇’이었는가?

마가복음 10:46~50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 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 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프로토콜(protocol).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프로토콜(protocol)

컴퓨터와 컴퓨터 사이, 또는 한 장치와 다른 장치 사이에서 데이터를 원활히 주고받기 위하여 약속한 여러 가지 규약(規約).

쉽게 설명하면, 애플의 맥북과 일반 노트북은 모양만 비슷할 뿐 다른 시스템이다. OS(Operating System, 운영체제)가 다르기 때문(맥북은 맥OS, 일반 노트북은 대부분 윈도즈)이다. 이렇게 시스템이 다른 장치 간에 파일을 주고받으려면 시스템 간 서로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따라야 한다. 이 약속이 바로 프로토콜이다. 프로토콜을 맞추지 않으면 어떤 경우에도 파일을 주고받을 수 없다.

컴퓨터와 프린터는 또 어떤가? 완전히 다른 장치다. 컴퓨터에 있는 데이터를 프린터에 보내 출력을 하려면 반드시 프로토콜을 맞춰야 한다. 프로토콜을 맞추지 않으면 데이터를 프린터로 보내 인쇄할 방법이 없다.

국가와 국가는 서로 다른 시스템으로 동작한다. 이 나라에서 허용되는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는 실례가 될 수 있다. 국가 정상 간 회담을 앞두고 외교 실무자들끼리 양국간 프로토콜을 맞춘다. 그래서 영어 사전은 프로토콜을 “외교 의례(儀禮), 의전(儀典)”으로 번역한다. 시스템이 다른 국가 간 중요 협상을 주고받으려면 프로토콜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그만큼 프로토콜은 중요하다.

바디매오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물질계(物質界)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영계(靈界)다. 서로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다. 이 물질계와 영계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프로토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3:6
 육으로 난 것 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 은 영이니

육에 속한 물질계와 영에 속한 영계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므로 영계(靈界)에 속한 은혜를 물질계로 이동시키려면 그에 맞는 프로토콜이 반드시 필요하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이 프로토콜을 위해 물질계와 영계를 잇는 십자가의 길을 내셨고 프로토콜을 위한 모든 일을 다 이루셨다(DONE). 그리고 말씀 안에 물질계와 영계가 소통할 수 있는 프로토콜에 대한 규약을 제시하셨다. 구약에서는 볼 수 없던 완전 새로운 방식이다. 물질계와 영계가 연결될 수 있는 획기적인 프로토콜이 생겨난 것이다. 영계에 속한 ‘구원’이란 은혜는 어떻게 물질계로 이동하는가? 정확한 프로토콜을 지킬 때 가능하다. 이 프로토콜의 스위치를 여는 것은 무엇인가? 바울은 이 프로토콜에 대해 정확히 이렇게 설명한다.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물질계에 속한 것이 아니요 ) 하나님의 선물이라( 영계에 속한 것이라 )

그렇다. 이 프로토콜의 열쇠는 ‘믿음’이다. 영계에 속한 하나님의 은혜를 물질계로 이동시키는 것은 바로 믿음이다. 마치 컴퓨터와 프린터가 프로토콜을 다 맞춘 후(약속에 따른 하드웨어적/소프트웨어적 설치) 상호 간 규약을 지키면 데이터가 반드시 이동할 것이란 확신을 갖고 “인쇄” 버튼을 클릭할 때 프로토콜이 동작하는 것처럼.

영계에 속한 기적이 순식간에 물질계에 속한 바디매오에게 임했다.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다. 서로 다른 차원 간 이동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프로토콜과 그 프로토콜을 동작시킬 스위치다. 이 프로토콜과 관련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10: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 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분명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의 치유의 능력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나의 신성(神性)과 메시아 됨이 너를 치유하고 자유롭게 하였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대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다. 무엇이 바디매오를 치료하였는가? 분명 예수님의 능력이지만, 이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마가를 통해 전달하려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일 거다.

왜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완전히 다른 물질계와 영계를 잇는 프로토콜이 바로 믿음이란 스위치에 의해 작동되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아마도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계에 속한 나의 ‘능력’을 물질계로 끌어와 기적을 일으키게 한 것은 바로 너의 ‘믿음’이다.

프로토콜과 관련한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가정집과 발전소는 다른 장치다. 발전소 전기가 집까지 도달하려면 송전탑, 변전소와 같은 프로토콜이 필요하다. 전기공사를 통해 프로토콜을 맞춰 가정집에 전기가 들어왔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전구의 빛이 바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발전소의 전기는 이미 집에 도달해 있다. 하지만, 이 전기의 능력이 전구의 불을 밝히려면 프로토콜을 동작시키는 스위치를 켜야 한다.

바디매오의 예도 다르지 않다. 발전소보다 더 큰 능력의 예수님이 사람들 앞에 이미 도달해 있었다. 기적을 능히 일으킬 능력이 사람들 앞에 도달해 있었다고 그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빛처럼 역사한 것은 아니었다. 오직 ‘믿음’의 스위치를 켠 바디매오만 이 기적을 경험했다.

마가복음 10: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 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우리(물질계, 집, 프린터)와 주님(영계, 발전소, 컴퓨터)은 다른 시스템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기적을 일으키는 주님의 능력이 이미 도달해 있다. 발전소의 전기가 집에 도달해 있는 것처럼. 무엇으로 스위치를 켤 것인가?

분명히 예수님을 따르던 허다한 무리가 있었지만, 예수님을 멈춰 세운 것은 바디매오였고 예수님의 능력을 자신 안으로 끌어온 것도 바디매오였다. 허다한 무리와 바디매오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었던 걸까?

사복음서 곳곳에서 특정 사람을 향해 ‘믿음이 적다, 크다, 없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믿음 감별사(鑑別師, discriminator)였음에 틀림이 없다. 중심을 보고 다윗을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중심 감별사이셨듯. 간절함에서 뿜어져 나온 믿음의 소리에 예수님은 발걸음을 멈추셨다. 왜 그랬을까?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게 한 믿음의 크기를 감별하셨기 때문이리라.

내가 노력해서 만들어 내는 믿음이 아니라 설득될 수밖에 없는 어떤 믿음이 들어올 때면 견딜 수 없이 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다. 바울이 이렇게 얘기했다.

고린도후서 4: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소리 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믿음이 바디매오의 입을 움직였다.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디매오는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였다. 이때의 믿음은 내 의지에서 나오는 믿음과는 분명 다르다.

무엇이 예수님을 멈춰 세우는가?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하늘의 믿음이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이때의 믿음은 내 의지로부터 나온 믿음과 분명 다르다. 완전히 설득된 채 무엇인가 표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그런 믿음이다. 그 믿음은 행동으로든, 소리로든, 어떤 형태로든 표현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때의 그 믿음의 표현을 통해 프로토콜의 스위치가 켜지고 영계의 기적이 물질계로 이동한다. 마치 하늘에 속한 예수님의 기적의 능력이 땅에 속한 바디매오에게 순간 이동한 것처럼.

그렇다면 영계의 기적을 가져오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

…너희 모두가 볼 수 있는 것처럼,
그에게 완전히 치유를 가져다준 것은
바로 그를 통해 들어온 믿음
예수의 이름이다. (NIV 해석)

…It is Jesus’ name and the faith
that comes through him
that has given this complete healing to him,
as you can all see. (NIV)

– 사도행전 3:16 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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