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대의 흐름, 착한 비즈니스와 따뜻한 자본주의 인터넷의 등장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던 정보의 권력을 대중에게 이양시켰다. 전통 매체는 무너지고 대신 소셜 미디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전 결코 접근할 수도, 알기도 어려웠던 정보마저 몇 단계의 소셜 관계를 거치면 순식간에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는 세상이다. 보는 눈이 많아졌다. 속이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앞으로 점점 더 기업은 대중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시대에 놓였다. 이런 흐름 가운데 ‘착한 비즈니스’가 등장했다. 시대적 흐름이다. 굳이 교회가 아니더라도 기업이 좋은 일을 많이 하려 한다. 착하지 않은 비즈니스는 더는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를 향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사회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느냐 아니면 기업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저널링(Journaling)’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적 귀소본능과 저널링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려는 본능이 있다. 애벌레는 나비가 되려는 본능이 있다. 도토리는 떡갈나무가 되려는 본능이 있다. 모든 생명은 이처럼 자기 자신이 되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한 개의 도토리 씨앗 안에는 수천수만 가지의 상황과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결국 떡갈나무가 되게 하는 놀라운 본능이 숨어 있는 것이다. 크리스천에게도 하나님이 심어 놓으신 이런 본능(Destiny)이 있다. 이 본능 안에는 ‘내면의 부르심(inner calling)’이 분명 존재한다. 모든 생명이 자기 자신이 되려는 본능이 있듯 이 내면의 부르심은 자기가 있어야 할 위치로 부른다. 연어는 바다로 나가 수년을 살다 때가 되면 내비게이션이나 지도도 없이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정확히 돌아와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묵상이 아니라 ‘하가’다
나를 알려면 하나님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려면 계시가 필요하다. 계시가 있으려면 잠잠한 시간이 필요하다. 잠잠한 시간을 갖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묵상이다. 가나안 땅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거창한 전략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전쟁 승리에 도움이 될 전략을 주신 것도 아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은 후 백 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을 책임져야 했다. 그런 그에게 가나안 전쟁을 앞두고 신신당부하신 것이 ‘묵상’이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비중을 두고 말씀하신 ‘묵상’의 원형적(原型的) 의미는 무엇일까? 1. 성경적 묵상은 ‘소리’가 중요하다 다른 종교도 묵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기계발 분야에서도 묵상을 강조한다. 묵상이란 단어를 들을 때 가장 먼저 마음의 평안을 위해 조용히...
하나님을 알려면 ‘계시’가 필요하다
‘나’를 알려면 하나님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럼 ‘하나님’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각종 기독교 서적과 신앙 자료를 연구하면 될까? 훌륭한 목사님들의 설교와 놀라운 이적을 체험한 분들의 간증을 많이 들으면 될까? 신학교를 들어가면 해결될까? 알고 있는 것을 많이 실천하면 될까? 이 모든 것은 틀림없이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얻은 감동과 깨달음이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생명만 나타나도록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그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관계다. 관계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아는 데서 시작한다.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들을 우리에게 드러나게...
나를 알려면 ‘하나님’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Knowing About God)’과 ‘하나님을 아는 것 (Knowing God)’은 다르다. 공부와 설교를 통해 얼마든지 ‘하나님에 관해(About God)’ 알 수 있다. 심지어 사탄도 ‘하나님에 관해’ 잘 안다. 하지만 ‘하나님에 관해’ 많이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생명이며 인격이다. 생명과 인격은 지식으로 아닌 관계로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공부와 지식을 통해 부모를 아는가? 그렇지 않다. 관계를 통해 아는 것이 먼저다. 동화책에 나오는 강아지 그림을 보고 ‘강아지에 관해 아는 것’과 실제 강아지를 품고 그 생명과 관계를 맺으며 ‘강아지를 아는 것’은 다르다.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도 그 이상 큰 차이가 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