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 여인과 생수 DAY 7 – 랩업

HAGAH OF THE LESSON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But whoever drinks the water I give him will never thirst. Indeed, the water I give him will become in him a spring of water welling up to eternal life (NIV)

KEY QUESTION

  • 한 주간 내용 중 다시 돌아보고, 오랫동안 가슴 깊이 붙들고 싶은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한 절로 한 주 '하가'하는 이유 펼쳐보기

하가를 하는 이유는 말씀을 매개로 주님이 내 모든 삶에 영향을 미치기 위함입니다. 말씀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기회를 얻는 거죠. 상황이, 환경이, 감정이, 다른 사람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근원이 돼야 합니다.

말씀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려면 일상생활에서 말씀이 떠올라야 합니다. 삶 속에서 말씀이 떠오르지 않으면 말씀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기회는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려면 한 절의 말씀이라도 암송하고 있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말씀을 접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의식적으로 인상 깊은 구절을 염두에 둡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생각날 때마다 중얼거리며 암송하는 훈련을 합니다. 이때 그 말씀을 접하며 받았던 감동과 인상을 암송할 구절 한 절에 압축하여 함께 기억하면 도움이 됩니다. 즉, 암송은 한 절을 하지만 그 절을 품고 있는 전체 컨텍스트 혹은 감동을 그 한 절에 압축하여 기억하는 거죠. 이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전체 컨텍스트를 한 절(節)로, 한 절을 다시 한 구(句)로, 한 구를 다시 한 단어(單語)로 압축하여 기억하는 훈련을 해보세요. 이런 훈련이 익숙해지면 일상생활에서 한 단어만 떠올려도 그 단어를 품고 있는 구와 절과 전체 컨텍스트가 함께 살아나거든요. 주님이 말씀을 매개로 삶에 영향을 미칠 재료가 풍성해지는 겁니다.

어느 정도 말씀이 익숙해지면 일상생활 언제, 어디서나 그 절(또는 구나 단어)을 수시로 떠올립니다. 밥을 먹다가도, 쉬는 시간에도, 사람을 만나기 직전에도 자꾸 말씀을 입술에 끄집어 올립니다. 이때 내가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읽는다란 느낌을 갖고 중얼거립니다. 내가 말씀을 읽는 주체면 내 한계 안에서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말씀이 나를 읽는 주체가 되면, 내 현재 상황과 전혀 맞지 않아 보이던 말씀조차 믿음으로 중얼거리는 어느 순간 그 말씀이 삶의 놀라운 통찰을 제공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가 바로 이런 순간에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신 주님의 지혜요, 하가의 유익입니다.

‘한 절로 한 주 하가하기 (A VERSE A WEEK, AVAW)’는 이런 배경 아래 시작됐습니다. 데일리하가는 한 절의 말씀으로 한 주를 충분히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관점의 재료를 공급해 드립니다.

DAY 7

[AVAW-치유와 회복] 사마리아 여인과 생수

– 랩업 –

세상에서 큰 인정을 받는
천 걸음보다
내 안에 계신
영의 영향을 받아
내디딘 한 걸음이
더 위대합니다.
내 안에 계신
영의 영향을 받는 것이
참된 예배의 시작입니다.

– 데일리하가 –

우리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상처를 바라보는 제대로 된 관점을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상처로 인한 안 좋은 경험들로 자기방어 벽을 높이고 그 상처를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여인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그 상처를 드러내고 정직하게 대면하도록 도우신 겁니다. 어둠은 빛에 드러나야 사라집니다. 주님이 만일 우리의 수치를 드러내신다면 조롱하거나 정죄하시기 위함이 아니요, 치유와 회복을 위함입니다. 주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치유하시고 생수를 주는 과정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부분과 풀어야 할 오해를 정리해 봅니다.

1. 주님은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을 기다린 게 아닙니다. 오랫동안 기다리신 건 주님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망각하며 현실을 살아갈 뿐이죠. 우리는 주님 자체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선물은 기다리면서요. 그런데도 주님은 우리의 선택과 자유의지를 존중하며 기다리십니다. 부서져 가루가 될 즈음 기꺼이 마음을 열고 주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를요. 주님이 여인에게 일곱 번째 남자로 선 것은 ‘완전’을 상징하는 ‘칠(7)’을 통해 그때가 바로 그 여인에게 나타나실 가장 완전한 때(카이로스)였음을 우리에게 암시해 줍니다. 주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향한 때가 차기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2. 주님은 생수를 주기 원하십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선물을 준비해 본 사람은 압니다. 마음이 담긴 선물일수록 받을 사람보다 준비하는 사람이 그 순간을 더 기다린다는 것을요. 예수님은 가장 정성스럽게 ‘하나님의 선물’을 준비한 분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기대하는 것을 넘어선 최상의 선물이었습니다. 주님의 가슴이 얼마나 뛰었을까요? 소중한 선물일수록 선물을 줄 최상의 때를 기다립니다. 주님은 이 선물을 들고 여인을 찾았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 4:10)

주님이 이 여인의 남편을 드러내시는 건 수치를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그토록 오랫동안 이 여인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신 분이 그럴 리 없습니다. 주님이 이 여인을 찾은 것은 생수를 주기 위함입니다. 이 여인을 찾으셨던 주님이 나를 찾으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선물을 주기 위해서.

이 여인의 선택을 존중하며 남편으로 인해 괴로워 한쪽 구석에서 울고 있던 여인 옆에 선물을 들고 함께 울고 계신 주님이 보이시나요? 나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했을 뿐 주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선물을 들고 함께 하셨습니다. 자신의 옆구리에서 영원한 생수를 쏟으시며 준비한 선물을요. 주님은 자신의 생명으로 낳은 자녀를 결코 학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내게 일어난 모든 불행을 내 죄에 화가 나신 주님의 징벌로 생각한다면 주님을 몰라도 정말 모르는 겁니다. 나의 상태보다 더 심각한 사마리아 여인에게까지 선물을 들고 ‘가야만’ 하셨던 주님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상처를 줬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먼저 찾아온 사랑입니다. 나를 향한 그 사랑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받아들여 거짓이 만들어낸 온갖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8~19)

3. 생수의 흐름을 막고 있는 문제를 직면하게 하십니다

이제 막 일곱 살 된 아이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최고의 선물을 주고 싶어 벤츠 자동차를 사주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그런 경제적 능력이 있어도 자동차 열쇠를 어린 자녀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위험하니까요. 최고의 선물이라도 때가 안된 사람에게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선물)가 준비 안 된 사람에게 풀리면 결국 그 사람을 망가뜨립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의 선물’을 언급하실 때가 이 여인을 위한 가장 최상의 때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요청하는 여인에게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은 ‘남편을 불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수치를 주기 위함이 아닌, 선물을 주기 위함이었죠. 사마리아 여인과 우리가 다른 차이가 있다면, 주님은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다는 겁니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은 밖에서 안으로 만나러 오시는 게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찾아오십니다. 주님의 선물은 이미 감춰져 있습니다. 생수의 근원이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상처와 쓴 뿌리와 문제가 이 생수의 근원을 막고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안에서 밖으로 오셔서 이 문제를 직면하게 하시고, 이 쓴 뿌리를 다루고 싶어 하십니다. 생수의 흐름을 풀어내 선물을 주고 싶어서죠. 이 선물을 받기 원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이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내 자유의지를 사용합니다. 기쁨으로 허락합니다. 옆구리 피와 물을 쏟으며 준비하신 선물을 제가 받기 원합니다. 만일 이 생수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는 문제가 있다면, 주님 드러내소서. 주님, 드러나게 하소서. 주님, 떠오르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한 후 마음 중심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떠오르게 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 문제를 직면하고 주님 앞에 인정하고 주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계속 기도합니다. 전적으로 성령의 이끄심과 흐름에 맞춰 기도합니다. 하루만 하고 기도를 끝내는 게 아니라 떠오르는 것이 없을 때까지 기도하면 좋습니다. 이때 주님은 나에게 선물 주기를 원하신다는 확신과 그 문제가 얼마나 심하건, 얼마나 오래됐건 주님은 능히 그것을 다루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혼을 앞둔 여인이 가장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모든 것을 정결하게 하는 기간을 갖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기도할 때 일곱 번째 나의 가장 완전한 남편이요 참 안식인 주님을 만날 것이란 기대와 함께요.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풀었으면 합니다.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 그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의 문제가 클수록 그 사람이 변화되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오래 걸릴 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오늘날 정신과 전문의, 심리 상담학 최고 전문가가 사마리아 여인의 치유를 돕는다고 할 때 긴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강렬한 빛으로 그 여인의 어둠을 드러낸 순간, 또한 그 여인이 마음 중심으로 그것을 인정하고 대면한 순간 즉시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영원을 붙들고 계신 주님은 결코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아무리 오래된 상처일지라도, 아무리 심각한 문제일지라도 주님이 만지시면 기간과 크기를 초월한 한순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너무나 완고한 죄인이 주님을 믿고 돌아서기까지 아주 오래 걸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이 빛을 비추시면 돌아서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요.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 가야만 하셨던 그 주님이 나를 만나러 와야만 하는 이유를 갖고 계시고, 사마리아 여인의 말 못 할 상황을 모두 알고 계셨던 그 주님이 그보다 더한 문제와 상처를 가진 나일지라도 나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계시며, 사마리아 여인을 따뜻하게 배려하면서도 강렬한 빛을 비추셔서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내신 그 주님이 내 삶에서 생수의 근원을 가로막고 있던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내실 수 있다는 것을요. 우리는 또한 믿어야 합니다. 여섯 번의 남자를 만나기까지 아주 긴 시간 상처와 문제와 싸웠다 할지라도 주님이 그것을 드러내실 때 한순간 해결됐던 것처럼, 나의 상처와 문제가 얼마나 오래되었던 또한 과연 이렇게 심각한 아픔이 해결될 수 있을까 싶은 문제까지도 주님의 빛 아래 드러나는 순간 사람의 시간을 초월한 새 창조가 일어나는 것을요. 사람은 크로노스(Chronos,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일반적 시간)에 갇혀 살지만, 주님은 자신이 정하신 카이로스(Kairos, 때까 차매의 ‘때’ – 임계점과 맞물린 하나님의 주권적 절대적 시간)에 즉시 일을 이루십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주님은 하십니다. 시간에 갇혀 있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시간을 초월한 영원을 연결합니다.

4. 생수를 계속 마시려면 영과 진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남편 얘기를 꺼내시지만, 그것은 생수를 주기 위한 과정일 뿐 예수님의 초점은 생수에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수를 얼마나 주고 싶으시겠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 4:10)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상처의 치유가 최종 목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주님이 이 여인으로 이끌기 원하는 최종 목적지는 그 생수를 마시게 하는 겁니다. 이런 맥락 아래 주님은 생수를 마시기 위한 아주 중요한 비밀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여 이 말씀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이 말씀은 사랑하는 이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수를 주기 원하시는 주님의 갈망 속에 꺼내신 말씀입니다. 달리 말해 생수를 마시려면 영이신 하나님을 접촉해야 하고, 그 접촉의 과정이 곧 예배라는 겁니다. 주님은 구약의 예배 제도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고, 이후 자신이 제물이 되어 옛 언약 아래에서의 예배를 폐하시고 새 언약 아래에서의 예배의 실제를 어떻게 드러낼 것을 이미 알고 계신 상태에서 이 여인에게 처음 말씀을 꺼내신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여인에게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 때가 오는데 곧 이 때다.”라고 말씀하신 거죠. “곧 이 때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3)

주님은 성전이신 자신의 육체를 허무심으로 완전히 차원이 다른 새로운 거주지를 마련하실 것을 아셨습니다. 이 산과 저 예루살렘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림자 아래에서 예배를 드리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정하신 장소로 나가야 했지만, 이제 그 장소는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다시 우리에게 오신 그 영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려면 영 안에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영 안에 있다는 것의 핵심은 그 영의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영 안에(엔 프뉴마티) 있을 때 영적(영의 영향을 받는 – 프뉴마티코스, Spirit-controlled)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구약 예배에 있어 장소와 제물의 중요성을 아셨던 주님은 자신이 그림자였던 제물을 대신하여 단번에 영원한 제물의 실제가 되어 십자가에 드려질 것을 아셨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이 제물의 실제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드려져야 합니다. 그 주님은 모든 만물의 실제입니다. 모든 만물은 주를 향하며, 주를 위하며, 주를 가리킵니다. 만물이 그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알파). 만물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오메가). 바로 그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만물이 있습니다. 진리 안에서 예배드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실제에 눈이 떠진 가운데 예배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춰진 예수가 드러나면 그 예수를 향하고 가리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실제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입니다. 교회 건물 안에 앉아 있다고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감성을 뒤흔드는 설교를 들었다고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영 안에, 진리 안에 있어야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주님이 알려주신 생수를 마시는 비결은 영 안에, 진리 안에서 주님을 만지고, 섬기고, 예배하는 겁니다. 그것이 주님을 마시는 비결입니다.

5. 생수를 통한 생명의 역사는 열매를 향합니다

생명은 열매를 통해 드러납니다. 생수를 마시는 이유는 영원한 생명을 위함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생명의 속성은 자랍니다. 생명이 자란다는 것은 이 생명의 영향력이 커짐을 의미합니다. 이 생명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 나무 밖으로까지 터져 나오는 것이 열매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생수를 주시는 이유는 목을 축이는 정도가 아닙니다. 단순히 치유 정도가 아닙니다. 생수가 내면을 다룬 이후에는 영원한 생명을 향해 외면으로 향하길 원하십니다. 그것이 곧 영생에 이르는 열매입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요 4:36)

사마리아 여인의 내면을 다루신 주님은 여인의 극복된 상처 위에 사명을 새롭게 하시고 그 지역의 가장 탁월한 복음 전도자가 되게 하십니다. 모든 사람 안에는 이 땅에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그에 합당한 능력을 두셨습니다. 하지만 죄와 상처는 이 능력을 왜곡시켜 드러나지 않게 하거나 아예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다 망가지게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생수로 상처가 치유될 때 주님의 생명의 능력은 이 사람의 상처를 타고 흐릅니다. 주님의 상처를 통해 생명의 역사가 흐르듯이요. 이 얼마나 놀라운 주님의 섭리인지요.

오늘 하루 이렇게 기도해보면 어떨까요?

  • 일주일 동안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나의 모습을 보고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어떤 거짓 교훈이 십자가에서 확증하신 주의 사랑을 왜곡하지 않게 하시고, 내 모든 믿음을 오직 주의 사랑 위에 굳건히 세우게 하소서.
  •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소중히 준비한 선물을 갖고 내 주변을 서성이셨던 주님. 그 선물을 들고 내가 눈물 흘리며 아파하는 그 자리마다 함께 하셨던 주님. 내 눈을 열어 때가 차기까지 목마름으로 기다리시는 주님을 보게 하소서. 그 사랑을 알게 하소서.
  • 이미 내 안에 생수의 근원이신 주님이 들어와 계심을 믿습니다. 그 생수의 흐름을 막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용기 있게 직면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도우시사 그 문제를 드러나게 하소서. 떠오르게 하소서. 알게 하소서. 인정하게 하소서. 내 안에 맑은 생수가 흐를 때까지 드러내고 씻기는 기도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내 상처와 문제가 너무 크고 오래돼서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란 거짓 믿음을 주님 앞에 내려 놓습니다. 내 상황과 환경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란 견고한 불신도 주님 앞에 포기합니다. 영원과 만물을 붙들고 계신 주님이 빛을 비추시면 모든 어둠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믿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주님은 하십니다. 내 믿음이 의심을 몰아내게 하시고, 진리가 내 생각을 새롭게 하소서.
  • 하나님은 영이시니 내가 영 안에서, 진리 안에서 예배하기를 원합니다. 종교로서의 예배가 아닌, 생명을 취하는 예배를 경험하게 하소서. 주의 영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주의 영에 접촉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사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생수를 경험하게 하소서. 그 생수를 날마다 마시는 것을 통해 내면에 생명의 역사가 꽉 차게 하시고 마침내 그 생명을 열매로 드러내게 하소서.

주님이 주신 감동을 함께 기도하면 어떨까요? 성령을 의지하여 내게 주신 울림을 쓰고, 나눌 때 기름부음은 배가됩니다. 저마다의 기도가 주의 영으로 합쳐져 주님 앞에 가장 귀한 향으로 올라가기를 소망합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여 ‘댓글 달기’를 통해 자유롭게 기도해주세요.

<함께 기도하기>에 참여하기
세상에서
많은 시련과 슬픔을
겪을 것입니다.
하지만 담대하십시오.
왜냐하면
내가 세상을 이미
이겼기 때문입니다.

Here on earth
you will have
many trials and sorrows.
But take heart,
because I have overcome
the world.

– 요한복음 16:33 NLT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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