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 – 나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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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GAH OF THE LESSON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9)

DAY 5

[AVAW-WHO AM I] 나는 누구인가?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여
길을 잃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고 싶다면
훈련된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영적인 삶에서 훈련이란
삶의 모든 영역이
다른 것들로
가득 차지 못 하게 막는
의식적인 노력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활동하실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 데이비드 마티스 –

KEY QUESTION

  •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일'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 왜 예수님은 아무 일도 하지도, 돕지도 않고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만 듣던 마리아를 향해 '좋은 일'을 택하였다고 말씀하셨을까요?
  • 왜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일까요?
  • 하나님 기준에 맞는 '좋은 일'은 하는 것의 문제가 아닌 위치의 문제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은 본능적인 욕구를 갖고 태어납니다. 배고프면 먹고 싶고, 졸리면 자고 싶습니다. 이런 생리적, 생존적 욕구 외에 경제적 안정과 같은 좀 더 높은 단계의 욕구도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낮은 단계의 욕구가 채워지면 그다음 단계의 욕구를 추구하기 마련입니다. 사람의 만족은 끝이 없습니다.

매슬로우는 이런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정리했습니다. 그중 가장 높은 단계는 자신의 잠재성을 끊임없이 계발하여 ‘자기(自己)’를 ‘실현(實現)’하려는 욕구입니다. 세상은 욕구를 충족시키며 자기 존재를 입증하고 실현하려는 상향성(上向性)을 추구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역설적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自己)’를 ‘부인(否認)’하려는 하향성(下向性)을 추구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게’ 보이는 이유입니다.

1. 자기실현이 아닌 자기부인의 길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것들이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또한 그런 영에 속한 것들은 오직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에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2:14)
The unbeliever does not receive the things of the Spirit of God, for they are foolishness to him. And he cannot understand them, because they are spiritually discerned. (NET)

세상이 추구하는 삶의 목적은 결국 자기실현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세상에 속한 크리스천에게 자기를 먼저 부인하고 따르라고 도전하십니다. 십자가를 통한 자기 부활만이 진짜 거듭난 자기(명작, masterpiece – 포이에마)를 찾아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과 세상이 ‘자기’를 실현하는 방법을 혼동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길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그것을 ‘선한 일 (good works)’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 (good works)’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에베소서 2:10 上, 개역개정)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 (good works)’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실현하는 삶을 선한 일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선한 일을 자신의 소견(所見)에 옳은 대로 해석하고 취합니다. 인본주의적 신앙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선한 일’은 무엇일까요?

2.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

‘선한, 좋은 (good)’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가토스’고 또 하나는 ‘칼로스’입니다. 똑같이 선하고, 좋고, 아름다운 것을 뜻하는 단어지만 ‘아가토스’는 보다 내면적인 것에, ‘칼로스’는 좀 더 외면적인 것에 사용합니다. 그러면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 사용한 ‘선한(good)’은 헬라어로 무엇일까요? ‘아가토스’입니다. ‘아가토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토브’를 사용하는데요. 하나님은 이 ‘토브’란 단어를 언제 가장 먼저 사용하셨을까요?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토브)… (창세기 1:4)

위 창세기 말씀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하신 것은 창조의 결과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즉 ‘아가토스’도 그렇고 ‘토브’도 마찬가지인데, 사람의 기준에서 ‘좋고 선한 것’이 아니라 드러난 결과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과 뜻에 일치해야만 ‘좋고 선한 것’입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서 ‘좋게’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선한 일(good works)’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 아무리 선한 비즈니스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감동할 만한 탁월한 결과라 할지라도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선한 일’이 아닙니다. 반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관심도 두지 않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일치한다면 그것은 ‘선한 일’입니다. 우리는 자기 소견에 맞는 ‘선한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은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일치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어진 존재입니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아가토스)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 :42)

‘마르다와 마리아의 비유’는 이 선한 것의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마르다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겼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분명 마르다는 선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가토스’가 의미하는 선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반면 마리아는 마르다의 원망을 샀습니다. 마르다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마리아는 사람이 아닌 주님의 관점에서 ‘선한(아가토스) 일’을 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은 아무도 십자가를 앞둔 주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소견에 옳은 ‘좋은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사람들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앞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주님의 기준에 옳은 ‘좋은 일’을 했습니다. 그 선한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갈증을 해갈시켰습니다. 주님의 편에서 ‘아가토스’한 일을 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예비하신 ‘선한 일’을 따라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goodness, 아가토수네-아가토스의 명사형)과 충성과…(갈라디아서 5:22)

양선은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하나입니다. 열매는 노력의 결과일 수 없습니다. 내적으로 충만해진 생명이 밖으로 드러난 결과가 열매죠.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을 때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의 노력이 아닌 나무의 생명이 흐른 결과로 맺혀지는 겁니다. 갈라디아서는 선한 일, 즉 ‘좋은 것(양선, goodness)’의 근원이 우리 노력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기준에 맞는 ‘선한 일’을 하려면 성령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의 열매인 ‘좋은 것(양선)’을 맺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선한 일’에 관해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 2:10, 개역개정)
For we are His workmanship, created in Christ Jesus for good works, which God prepared beforehand that we should walk in them. (NKJV)

‘전에 예비하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로에토이마조’입니다. 이 단어의 어근 ‘헤토이마조’는 아래와 같은 뜻이 있습니다.

헤토이마조

왕의 여정과 관련하여 길을 평탄케 하고 왕이 지나갈 수 있도록 왕 앞서 사람을 보내는 동양의 관습에서 의미가 만들어짐
hetoimazo : drawn from the oriental custom of sending on before kings on their journeys persons to level the roads and make them passable

베드로는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베드로전서 2:9)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 왕권(kingship)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sonship)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대사(大使)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 표현에 따르면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기 위해 지음을 받았습니다. 대사는 자기 생각에 옳은 좋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나라의 기준에 맞는 좋은 일을 합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은 이 ‘선한 일’을 가리켜 ‘전에 예비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이 선한 일을 위해 노력하는 영역이 아님을 뜻합니다. 이미 ‘전에 예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셨다’는 것은 ‘헤토이마조’란 원어 의미를 통해 볼 때, 왕의 자녀인 우리를 세상에 보낼 때 왕이 지나갈 수 있도록 이미 앞서 길을 평탄케 하시고 모든 것을 준비시켜 놓으셨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미 평탄케 되어 있는 이 길을 걷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10절은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즉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가 지나갈 수 있도록 이미 평탄케 예비하신 그 길 가운데서 걷게 하려 (we should walk in them…) 라고 기록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 2:10, 개역개정)
…God prepared beforehand that we should walk in them. (NKJV)

아버지 하나님이 왕의 자녀를 위해 창세 전에 이미 길을 다 평탄케 하시고 준비해 놓으신 길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 길은 감각의 영역이 아닙니다. 진리에 근거한 믿음의 영역입니다. 믿는 자만이 이 길을 발견할 수 있고, 산지를 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선한 일은 하는 것의 문제가 아닌, 바른 위치에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애벌레는 노력해서 나비가 되지 않습니다. 생명 안에 있으면 때가 차매 나비가 됩니다. 가지가 나무의 생명에 붙어 있기만 하면 때가 차매 열매를 맺는 겁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있기만 하면 때가 차매 선한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일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이렇게 기도해보면 어떨까요?

  • 주님. 십자가를 통한 자기 부활만이 진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나’를 발견하는 길임을 고백합니다. 세상이 자기실현을 향한 상향성의 길을 추구할 때, 자기부인을 통한 십자가의 자리로 내려가 나비처럼 부활하기 원합니다. 내가 애벌레가 아니었음을, 나비였음을 깨닫는 자기부인의 과정을 통과하게 하소서.
  • 내가 살아있을 때, 내가 보기에 옳은 선한 일을 추구했습니다. 십자가를 앞둔 주님의 마음을 아무도 헤아리지 못한 가운데 분주히 선한 일을 하려 했던 마르다의 우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주님의 마음에 연결되어 주님이 원하시는 그 일을 하는 선한 자가 되게 하소서.
  • 주님.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자입니다. 바로 이 일이 하나님께서 이미 전에 완벽하게 예비해두신 것임을 믿습니다. 왕의 자녀를 위해 미리 평탄케 하시고 다 준비해 놓으신 그 길을 걷는 것이 곧 선한 일임을 깨닫게 하소서. 선한 일은 무엇인가 하는 것의 문제가 아닌, 주님이 마련하신 생명의 길 위에 있어야 하는 문제임을 알게 하시고 일이 아닌 생명에 초점을 맞추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이 주신 감동을 함께 기도하면 어떨까요? 성령을 의지하여 내게 주신 울림을 쓰고, 나눌 때 기름부음은 배가됩니다. 저마다의 기도가 주의 영으로 합쳐져 주님 앞에 가장 귀한 향으로 올라가기를 소망합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여 ‘댓글 달기’를 통해 자유롭게 기도해주세요.

<함께 기도하기>에 참여하기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아가토스)을 이루느니라

– 로마서 8:2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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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 A Ha
JUNG A Ha
7 months ago

주님, 저의 모든 자아를 깨뜨려 주님앞에 엎드리게 하소서.
제 뜻대로 살아가는게 아닌 저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이땅가운데 보냄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뜻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순종할때에 하나님께서 일하실 줄을 믿습니다.
낮은자를 높이시는 하나님, 언제나 겸손함으로 모든 이를 편견없이 품고 섬길 수 있는 주님의 넉넉한 마음을 부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Gim
Gim
9 months ago

하나님 아버지,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또 이 사이트 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선한 일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앞섰던 지난 날을 진정으로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선한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으니 이 땅에 사는 동안, 늘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고 평생 그렇게 살다가 훗날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불러 주시는 자로 천국에 가기를 소망합니다. 이미 평탄케 하신 그 길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늘 주님께 아뢰며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행하게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ffort72
effort72
3 years ago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선한 삶의 길을 매일 매일 알아 순종하게 하소서.
성령을 따라 예수님의 생명 안에서 사는 삶을 가르쳐 주소서.
자기실현이 아니라 자기부인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이 아니라
주님이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하게 하옵소서.
이런 선한 일을 행하기에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으신 줄 믿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갈 때, 그 길 바로 주님이 예비하신
그 길을 제가 걸어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흔들리지 말고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저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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