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9 저녁]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가 열매를 맺습니다

[

HAGAH of the Week

사도행전 2: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HAGAH of the Day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가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열매 맺는 자로 살기 원하십니다. 열매를 약간 맺는 게 아니라 많이, 풍성히 맺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을 때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5, 8)

그런데 왜 우리는 열매 맺는 삶을 살지 못할까요? 열매를 맺는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열매를 많이 맺는 것과 관련하여 말씀하시면서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구약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땀과 노력으로는 ‘생명’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열매는 생명의 역사입니다. 생명에 이르는 길은 주님을 떠나서는 이를 수 없습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가 지식이 아니라 내 삶에 실제가 될 때까지 주님은 우리에게 비바람과 같은 고난을 허용하십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확신이 아니라 내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확신이 될 때까지요.

주님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크고, 멋지고, 중요한 일만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떤 것(Anything)도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한 형제가 밥숟가락을 들 때 성령님의 터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이렇게 고백했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떠나서는 밥숟가락도 들 수 없는 자입니다’라고. 하나님은 이 형제의 마음 중심을 아셨고, 확신하셨습니다. ‘진정 스스로는 밥숟가락 조차 들 수 없다’는 이 형제의 절절한 자각에 눈물로 응답하셨습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삶의 가장 사소한 영역에 이르기까지 실제가 되지 않으면 주님으로 말미암은 열매는 맺을 수 없습니다. 이 마음이 있는 사람은 길을 걷다가도, 청소하다가도, 설거지하다가도, 하늘을 쳐다보다가도 이 고백과 함께 그저 눈물을 흘립니다. 이것이 신약의 역사입니다.

어린아이일 수록 부모 의존도가 높습니다. 머리가 커지고 자아가 강해질수록 부모 의존도가 낮아집니다.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어린아이일 수록 잘 놀다가도 부모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웁니다. 늘 부모를 보는 것을 통해 안정감을 누립니다. 아기가 부모의 얼굴을 가장 많이 보는 기간에 가장 빠른 육체의 성장이 이뤄집니다. 이것은 영적인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매는 생명이 성장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 역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다윗입니다. 다윗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 눈을 주님에게서 떼지 않았습니다.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시 25:15)

항상 주님을 바라본 다윗의 고백을 통해 보는 것과 열매의 관계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16:8)

다윗이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신다’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의 시대가 열린 역사적인 순간에 수많은 구약의 성경 구절 중 다윗의 이 시편 16:8 말씀을 끌어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합니다.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행 2:25)

다윗이 말한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신 것’을 베드로는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윗은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가 눈앞에 사라지면 큰일 날 것처럼 그 믿음의 눈으로 항상 주님을 본 자였습니다.

‘모심이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샤바’입니다. 히브리어 사전을 찾아보면, ‘놓다(set), 두다(place), 닮다(resemble), ~와 같게 되다(become like), 평평하게 하다(level), 평온하게 하다(still)’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왜 이런 의미들을 갖고 있을까요? 대상을 내 앞에 두면 그 대상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가까이 있는 대상을 닮아 갑니다. 주님을 내 앞에 항상 모시면(샤바, set), 주님을 닮아갑니다(샤바, resemble). 주님과 같이 됩니다(샤바, become like). 주님으로 인해 평온하게(샤바, still) 됩니다. 주님의 다스림으로 삶이 평평하게(샤바, level) 됩니다.

베드로는 다윗이 항상 주님을 봤다고 했고, 다윗은 주님을 모셨다고 했는데, 모시다의 히브리어 원어 ‘샤바’에는 ‘평온하게 하다(still)’란 뜻이 있습니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샤바)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시 131:2)

‘젖 뗀 아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가말’은 ‘젖을 떼다’란 뜻 외에 ‘열매가 익다’란 의미를 포함합니다. 울며 보채던 아이에게 충분히 젖을 준 후(가말) 떼어(가말) 어미 품에 있게 하면 참으로 평온합니다(샤바, still). 아이가 엄마를 자기 눈앞에 모셨고(샤바), 엄마를 보는 것을 통해 아이는 열매 익듯(가말) 자랍니다.

사랑, 기쁨, 평안,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의 열매는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영향을 받습니다. 부모가 어려울 때 눈물 흘리며 새벽기도 하는 모습을 본 자녀는 커서 인생의 어려운 순간 부모의 모습을 떠올리며 새벽기도 자리에 나갑니다. 어느 순간 자녀가 ‘보고’ 배운 부모의 모습이 나타나는 겁니다. 성령의 열매도 그러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내 안에 계신 주님에 대한 확신과 성령을 통해 나타난 주님의 인격을 ‘보는 것’으로 드러난 결과여야 합니다.

가장 사소한 것에서 주님을 절대 의존하는 자가 더 큰 사역에서도 주님을 절대 의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절대 의존하는 것은 ‘주님을 떠나서는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심연 깊숙한 통감이며, 엄마가 내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줘도 아무 소용이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입니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합시다.

부활의 열매이신 주님. 당신의 영으로 내 안에 오셔서 생명의 포도나무가 되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가지인 제가 스스로 열매 맺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내 눈을 여셔서 주님을 떠나서는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임을 알게 하소서. 주님을 떠난 나의 경험, 나의 지식, 나의 강점은 쓸모없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것들로 이뤄내는 일들이 저로 할 수 있다는 착시현상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눈앞에 엄마가 없으면 그 어떤 좋은 것으로도 만족 못 하고 엄마를 찾을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절대 의존의 마음을 갖게 하소서. 주님을 내 앞에 모심으로 내가 평온하기를 원하며 젖 뗀 아이가 엄마 품에서 엄마를 보며 성장하듯 내가 주님 품에서 주님을 봄으로 열매를 풍성히 맺는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많은 사람이 오늘날
성령의 열매를
천연적인 노력과
성품 개발로
만들려 합니다.
그들은 철학, 교육, 윤리,
인류학, 정신과학 등을 통해
성품을 개발하려고
자신의 의지를 훈련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믿는 자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나타난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더 완전히 성령님으로
채워질수록
그의 삶과 일에
성령의 열매가 더 위대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Many people today are attempting
to produce the fruit
of the Spirit
through natural efforts
and character-building.
They exercise their wills
to produce character
through philosophy, education,
ethics, anthropology,
mental sciences.

The fruit of the Spirit
is the character
of Christ produced
by the Spirit of Christ
in the believer’s life. The
more completely one
is filled with the Holy Spirit,
the greater will be
the manifestation of the fruit
of the Spirit
in his life and work.

– 푸쉬아 피켓 (Fuchsia Picket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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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years ago

베드로가 물위를 걸을 수 있었던
단한가지의 이유는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실 수 있었던 것은
늘 아버지를 보시고 동행하시고
아버지의 사랑을 끝까지 믿었기때문입니다

나도 늘 주를 볼때

예수님을 닮아
성령의 열매 맺을걸 믿습니다

1324
1324
5 years ago

참 좋습니다
참 기쁩니다

젖땐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는 설명은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 내가 항상 내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그가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위하여
내 우편에 계시도다 ‘ 라는

성경구절을,
다윗의 마음을,

확실히 알게 합니다

엄마가 없을때 아기의 불안함과
엄마와 함께할때의 평온함과 행복

이 극명한 차이는 엄마가 눈앞에 있냐 없냐 이였습니다

오늘에서야

내가 항상 내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란 구절의 의미를, 다윗의 마음을 알거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따뜻한 저녁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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