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7 저녁] 주님을 경외하는 자가 주님을 봅니다

[

HAGAH of the Week

사도행전 2: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HAGAH of the Day

Acts 2:25
David said about him:
I saw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will not be shaken.

주님을 경외하는 자가 주님을 봅니다

해맑은 얼굴로 그 두 눈을 부모에게 고정한 아이들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다윗 역시 그 두 눈이 항상 주의 얼굴을 향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진심으로 사랑하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시 25:14~15)

경외는 율법적으로 그냥 두려워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없는 순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의 실존에 반응하는 태도가 바로 경외입니다. 종의 태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부모를 향한 너무 크고, 너무 소중한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어떤 특별한 순간에만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순간에도 그 사람을 생각하고, 의식하고,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바로 그 마음이 다윗이 얘기한 경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없어도 그 사람이 싫어할 만한 것은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않게 되는 것이 경외입니다. 종의 태도로 율법적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에게는 결코 ‘친밀하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를 향해 너무 소중하고 큰마음을 지닌 자녀에게는 ‘친밀하심’이 있습니다. 이런 자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이란 고백입니다. 내 안에 성령님으로 계신 주님이 너무 소중하고 커서 삶의 모든 순간마다 생각하고, 의식하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찰 때 내 마음의 눈은 항상 주님을 향합니다. 성령님과의 교제는 바로 이 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것이 주를 경외하는 삶의 시작입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 즉 그 두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보는 자에게 어떤 은혜가 임할까요?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비밀을 알게 하십니다. ‘친밀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소드’는 친밀한 관계에만 은밀히 알려주는 ‘비밀’을 뜻합니다. 또한,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마땅히 이루실 그의 언약을 보이십니다. 이 친밀하심(비밀)과 언약은 길을 홀로 걸을 때도, 식사 하러 갈 때도, 잠깐 쉬는 시간에도, 샤워할 때도, 지하철 안에서도, 중요한 미팅을 앞둔 자투리 시간에도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을 보려는 자에게 베푸시는 아버지의 선물입니다. 또한, 그 눈을 그물이 아닌 주님께 둔 자에게는 그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상식적으로 그물과 같은 불편한 상황이 몰려오면 그 눈은 문제를 향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모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기를 덮는 그물을 보지 않고 그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봤습니다. 내 눈이 그물을 보고 있으면 내가 그 그물을 해결해야 하지만, 내 눈이 주님을 보고 있으면 주님이 그 그물을 해결하십니다.

마르다와 달리 주님 발 앞에 앉아 있던 마리아의 주를 향한 사랑은 경외였습니다. 또한, 그것은 친밀함이었습니다. 율법이 아닌 사랑에 기인한 경외는 그 눈을 멀게 합니다. 주님 한 분으로 마음을 빼앗긴 자들이 ‘주님…’이라고 그 이름을 부르며 주님을 바라볼 때 치료하는 빛이 임하고,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처럼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은 자유로움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 4:2)

오직 사랑하는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눈을 성경은 ‘비둘기의 눈’에 비유합니다. 주님은 두 마음을 품은 자들(double-minded)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약 4:8)
Draw near to God and He will draw near to you Cleanse your hands, you sinners; and purify your hearts, you double-minded. (NASB)

마음 중심은 평소 때는 모릅니다. 위기 상황일 때 본색이 드러납니다. 아무리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할지라도 가장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마음속에 감춰진 이빨이 드러납니다. 주님은 이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다윗은 이 마음 중심이 깨끗한 자였고, 이 마음 중심이 항상 주님을 경외하고, 그 눈이 주님을 향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경외에 관해 예레미야를 통해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렘 32:39)
I will give them SINGLENESS of heart and action, so that they will always fear me for their own good and the good of their children after them. (NIV)

언제 주를 경외합니까? ‘한 마음과 한 도’를 받을 때입니다. 영어표현으로는 마음과 행동의 ‘싱글니스(singleness, 단일함)’입니다. 마음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지 않은 상태. 오직 주님만이 내 목적인 상태가 단일함입니다. 이쪽 마음으로는 주님을 갈망하면서 다른 쪽으로는 주님이 아닌 것을 붙들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singleness가 아닙니다. 다윗은 주를 향한 마음과 행동의 단일함(singleness)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주를 경외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 두 눈이 오직 주님을 보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윗은 여러 가지를 구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일,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기를 갈망하는 자였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 27:4)
ONE THING have I desired of the LORD, that will I seek after; that I may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all the days of my life, to behold the beauty of the LORD, and to enquire in his temple. (KJV)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은 자들(double-minded)에게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고 말합니다(약 4:8). 왜 그럴까요? 그래야만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말씀을 가장 먼저 하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8)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will see God. (NIV)

‘청결한’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카다로스’입니다. 마음이 이것저것으로 섞여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주를 향해 두 마음을 품은(double-minded) 상태가 아닌 단일한 마음을 품은(single-minded, one thing) 상태입니다. ‘카다로스’는 ‘가지치기(to prune)’와 관련 있는 단어입니다. 좋은 열매를 많이 맺으려면 가지치기를 해줘야 합니다. 나무의 생명이 분산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가지를 깨끗하게 즉, 가지치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 15:2)
Every branch in Me that does not bear fruit, He takes away; and every branch that bears fruit, He prunes it so that it may bear more fruit. (NASB)

‘깨끗하게 하다’의 헬라어 ‘카다이로’는 ‘카다로스’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깨끗하게 하는 것, 청결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로채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쓸모없는 가지를 잘라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마음이 잔가지로 덮여 있으면 하늘을 볼 수 없습니다. 이 잔가지를 처리해줄 때 비로소 하늘이 보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 시선을 고정할 수 있는 자는 마음이 청결한 자입니다. 잔가지가 없는 자입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마음과 행동의 단일함(singleness)을 가진 자입니다. 이것이 경외의 모습입니다. 주님과의 진정한 교제는, 성령님과의 진정한 교제는 주를 향한 그 단일한 마음으로 보려 할 때 시작됩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열매를 맺는 것 역시 마음의 청결함에서 오는 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합시다.

나를 주님께로 이끄시는 성령님. 나를 돕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신 성령님. 내 눈이 오직 주님 한 분만을 향하길 소원합니다. 잔가지로 덮여있는 제 마음을 긍휼히 여기시사 오직 주님 한 분을 향한 단일한 마음을 갖도록 가지치기를 하여 주옵소서. 다윗이 품었던, 마리아가 품었던 주를 향한 경외가 제게도 있게 하소서. 그 경외 가운데 임한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제게도 있길 소원합니다. 그 친밀하심 가운데 주의 비밀과 언약을 보게 하소서. 내 눈이 항상 주를 볼 때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치유의 광선을 비추시고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 하나님,
당신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당신을 갈망합니다.
내 육체가 주를 앙망합니다.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처럼,
내 영혼이
당신으로 인해 목마릅니다.
성소에서 나로
당신을 보게 하소서.
당신의 권능과 영광을
보게 하소서.

O God, you are my God,
and I long for you.
My whole being desires you;
like a dry, worn-out,
and waterless land,
my soul is thirsty for you.
Let me see you
in the sanctuary;
let me see
how mighty and glorious you are.

– 시편 63:1~2, GNT 번역 (Psalms 63:1~2, Good News Transl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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