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09 저녁] 진정한 섬김의 본질은 ‘활동’이 아닌 ‘기다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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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GAH of the Week

고린도전서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HAGAH of the Day

에베소서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진정한 섬김의 본질은 ‘활동’이 아닌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곳이 성전입니다

성전은 건축의 화려함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곳이 성전입니다. 그 성전에 거하고 계신 하나님을 전문적으로 섬기던 사람을 성경은 제사장이라 부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이후 건물로서의 성전은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신 후 그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주님을 영접한 자 안에 거주하실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너무 많은 얘기를 듣다 보니 너무나 무뎌졌습니다. 만유를 포함한 예수님이 영으로 내 안에 들어오셔서 살고 계십니다. 이것은 이론이나 지식이 아닙니다. 실제입니다. 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놀라운 소식입니까? ‘주님이 영으로 내 안에 들어오셨다’는 이 진리가 내 삶에 실제가 될 때 이것은 가장 강력한 복음이 됩니다.

주님은 안식할 거주지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입은 우리는 안식할 거주지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원래 이것은 주님의 속성입니다. 사람에게 있어 안식처의 정점은 건물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입니다. 화려한 궁궐이 있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 궁궐은 그저 건물일 뿐입니다. 누추한 초가삼간일지라도 그곳에 내 마음을 전심으로 품는 사랑하는 사람이 거하고 있다면 그곳이 진정한 안식처일 것입니다.

성전은 종교적 개념이 아닌, 하나 되고 싶은 주님의 마음입니다

성막과 성전은 결코 건물과 종교적 활동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다’라는 말씀은 ‘그러니 이제 너희는 종교인처럼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에 초점을 맞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내가 너를 정말로 사랑한다. 네 안에 영원히 거하여 정말로 하나가 되고 싶다’에 대한 하나님의 갈망을 표현한 것입니다. 성전에서 중요한 것은 건물도, 집기도, 여러 종교의식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싶은데 그것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을 처리하기 위한 절차적 상징일 뿐입니다. 본질은 주님이 나와 완전히 하나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섬김은 나를 비우고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여 하나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이 갈망에 눈이 떠져야 합니다. 주님의 이 목마름에 눈이 떠질 때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섬길 수 있습니다. 진정한 섬김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그 사람의 결을 이해하고, 그 결에 맞춰 리듬을 타려는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싫어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대상을 진심으로 섬기려면 나의 관점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섬김(to wait on)‘은 내 마음을 비우고 비워진 그 자리에 상대방의 마음을 담으려는 ‘기다림(to wait on)‘입니다. 기다리는 것은 상대방의 드러나지 않은 필요까지 들으려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기를 바라셨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스라엘아 들으라(쉐마 이스라엘)‘고 외치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외면적 활동’ 이전에 상대방의 마음의 결을 이해하고 그 결에 맞춰 리듬을 타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먼저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4~5)

들으려는 마음이 곧 상대방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기다림(to wait on)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섬김(to wait on)입니다.

지성소에서의 섬김의 본질은 ‘활동’이 아닌 ‘기다림’입니다

성전은 바깥뜰, 성소, 지성소로 이뤄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바깥뜰과 성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은 지성소였습니다. 바깥뜰과 성소에서의 섬김은 ‘성전’을 섬기는 것이지 ‘주님’을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바깥뜰은 잘 보입니다.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곳에서의 섬김은 잘 보입니다. 그래서 착시 현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외양적 신앙생활도 그러기 쉽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눈물 흘리며 찬양했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 주님을 섬긴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섬김은 나의 만족으로 그칠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더 깊이 지성소까지 나아가 주님의 필요를 섬긴 것이 아니었다면 그저 성전을 섬긴 것에 그친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성전이라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존재 가장 깊은 곳에 영으로 계십니다. 주님이 계신 그곳이 바로 지성소입니다. 그 지성소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주님은 영으로 그 안에 거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계신 영에 초점을 맞춰 보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의 첫 번째는 외양적 종교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드러나는 기도와 찬양과 예배가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 사랑하는 ‘임’이 계신 지성소까지 나가려는 절차적 섬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수많은 종교적 활동이 성전의 필요만 채우고 정작 주님의 필요는 알지도 못한 채 끝나 버릴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섬김의 본질은 성전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성소에서의 섬김의 본질은 ‘활동’이 아니라 ‘기다림’입니다. 이 기다림은 내 마음 중심에 상대방의 마음을 모시려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는 ‘기다리다’와 ‘간절히 바라다’를 같은 뜻으로 사용합니다.

한 대상을 향한 간절한 바람과 기다림이 듣는 것으로 나타날 때, 그 대상의 마음이 내 안에 들어와 그의 필요가 나의 필요가 될 때, 그제야 비로소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한 열심과 노력이 율법이 아닌 죽음을 통과한 행위가 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행위는 그래서 자신에게서 나온 열심이 아닌 상대방에게 맞추기 위해 죽음을 통과한 행위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섬김입니다.

주님의 요구는 배고픔 만큼이나 실제입니다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계십니다. 이것은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지성소에 계신 주님은 그렇게 느낄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지성소에는 빛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섬기는 것이 감각의 영역이 아님을 상징합니다. 지성소에서 요구하는 것은 오직 진리에 반응한 믿음뿐입니다. 진리에 반응한 믿음만이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실제화시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내 안에 주님이 살아 계십니다. 이것은 육체의 배고픔 만큼이나 실제입니다. 육체는 배고프면 먹을 것을 요구합니다. 졸리면 잠을 요구합니다. 이 육체의 요구만큼이나 내 안에 거하고 계신 주님의 요구도 실제입니다. 매 순간 달라질 수 있는 주님의 요구에 눈과 귀를 닫고 살 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종교적 활동으로 전락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모든 생명은 필요와 요구가 있습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생명 또한 필요와 요구가 있습니다. 종교적 활동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닌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 하나 되기를 갈망하는 주님의 마음에 눈떠지기를 기도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3:16)

마음 모아 함께 기도합시다.

주님. 저는 저의 목마름과 배고픔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안식할 것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목마르고 배고프고 안식하기를 원하는 것만큼이나 주님도 나를 향해 이런 갈망을 갖고 계셨음을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주님의 결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주님을 사랑한다고 종교적 활동에만 열심을 냈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눈물 흘리며 찬양하고 기도한 것으로 주님을 만났다 생각하고 스불론과 같은 일상에서는 주님을 인식하지 않고 살았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내가 경험해야 할 주님과의 관계는 연인과의 관계만큼이나 실제이며 훨씬 더 깊은 것임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을 같이 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 제 안에 본성으로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본성이 아니라 주님의 본성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나를 섬기기 위해 지금까지 기다리신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제가 주님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성전)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주님의 필요를 아는,
마음과 마음을 연결할)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you also,
like living stones,
are being built into
a spiritual house
to be a holy priesthood,
offering spiritual sacrifices
acceptable to God
through Jesus Christ. (NIV)

– 베드로전서 2:5(1 Peter 2:5, NIV) –

배경음악 작곡/연주 : 곽은기 / 제목 : 일상 / Release : 20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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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고
조급했던 마음이 시원해지고
모든것을 주님의 뜻대로 이루실 주를 믿게되고
기다리게됩니다

나를 기다리시고
기다려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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