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08 저녁] 성령님은 스칼라가 아닌 벡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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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GAH of the Week

고린도전서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HAGAH of the Day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님은 스칼라가 아닌 벡터입니다

수학과 물리 시간에 ‘스칼라’와 ‘벡터’에 대해 배웁니다. ‘스칼라’는 단지 크기만 있는 물리량이고. ‘벡터’는 크기뿐 아니라 방향까지 있는 물리량입니다.

성령님을 비유하자면 ‘스칼라’ 보다는 ‘벡터’에 가깝습니다. 성령님은 크기만 있는 분이 아니라 방향성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방향성에 관해 알 수 있는 성경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이 모든 방향성을 압축하면 크게 두 가지 방향성이 있고, 그 두 가지는 최종 한 가지 방향성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란 말씀을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먼저이고, 그다음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십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방향성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죽음을 상징하는 세례를 통해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의 새 옷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 즉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 주시는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가 되는 과정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 3:27)
For all of you who were baptized into Christ have clothed yourselves with Christ. (NASB)

세례를 통해 죽음을 통과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여러분 모두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의의 근원인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갈 3:27, NASB 기준 의역)

1. 밖에서 안으로

세례도 옷도 모두 입는 것입니다. 세례는 물속으로 완전히 잠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로 옷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첫 번째는 물로 옷을 입고, 두 번째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습니다. 물로 옷을 입은 자가, 즉 완전히 죽은 자가 그리스도로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옷은 ‘의(義)’의 자격과 거듭나 아버지의 자녀가 된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입는 것의 방향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밖에서 안으로입니다. 안에서 밖으로 입는 자는 없습니다. 자격은 주어지는 겁니다. 밖에서 안으로입니다. ‘거듭나다’의 헬라어 원뜻은 ‘위로부터 태어나다(born from above, 겐나오 아노덴)‘입니다. 밖에서 안으로입니다. 생명을 주는 영은 밖에서 안으로입니다.

성령님은 크기뿐 아니라 방향성을 갖고 계십니다. 그 첫 번째 방향성은 바로 밖에서 안으로입니다.

2. 안에서 밖으로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먼저이고, 그다음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십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나’를 기준으로 보면 안에서 밖으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방향성을 살필 때는 언제나 ‘나’가 아닌 ‘주님’을 기준으로 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준으로 보면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밖에서 안으로 나의 죽을 영을 완전히 감싸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면 그 다음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십니다.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은 생명의 영입니다.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을 기준으로 보면 이제부터는 성령님의 방향성은 안에서 밖으로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성령님의 방향성을 설명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but whoever drinks of the water that I will give him shall never thirst; but the water that I will give him will become in him a well of water springing up to eternal life. (NASB)

세례를 통과하지 않은 자에게 물은 죽음입니다. 하지만 물의 세례를 통과한 자에게 물은 이제 생명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물에 대한 관점입니다. 밖에 계신 예수님의 영이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제 그 영은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됩니다. 솟아나는 샘물의 방향성은 안에서 밖으로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초막절 수군거리던 유대인들을 향해 도래할 성령님을 가리켜 말씀하시면서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하십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 7:37~39)
37. Now on the last day, the great day of the feast, Jesus stood and cried out, saying, “If anyone is thirsty, let him come to Me and drink.
38. “He who believes in Me, as the Scripture said, ‘From his innermost being will flow rivers of living water.'”
39. But this He spoke of the Spirit, whom those who believed in Him were to receive; for the Spirit was not yet given, because Jesus was not yet glorified. (NASB)

그 배(innermost being)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것의 방향성은 안에서 밖으로입니다.

3.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

입는 물이 있고, 마시는 물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를 보충해서 그 물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성령임을 설명합니다. 입는 물인 세례를 통해 죽음을 통과한 자는 이제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그 물을 마실 때 밖에서 안으로 역사한 성령님은 이제 안에서 밖으로 역사하여 생명의 강물이 흘러나오게 합니다.

성령님의 밖에서 안으로의 방향성은 ‘의(義)’를 가져옵니다. ‘나의 자격’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자격’을 입혀 줍니다. 아직 남아 있는 죄성으로 쓰러져 신음하는 그 순간에도 성령님은 밖에서 안으로 역사하셔서 ‘나의 자격’으로 주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자격’으로 서는 것임을 깨우쳐 주십니다. 그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하고 흐르는 보혈의 능력입니다.

성령님의 안에서 밖으로의 방향성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생명은 성장합니다. 성장하면 변화합니다. 생명의 역사에 있어 성장과 변화는 노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에 속한 능력입니다. 그래서 열매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맺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로 계신 성령님은 안에서부터 밖으로의 변화와 성장을 이끕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을 인식하고, 그 생명을 멈추지 않고 받아들이면 그 생명에 속한 능력은 생명의 목적을 이루는 방향으로 이끕니다.

구원의 관점에서 성령님의 밖에서 안으로의 방향성은 ‘칭의(稱義, justification)’, 안에서 밖으로의 방향성은 ‘성화(聖化, sanctification)’로 볼 수 있습니다.

4. 오직 예수님 한 분을 향하여

성령님의 방향성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그 두 가지를 하나로 압축하면 성령님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을 향하고 가리킵니다. 우리를 향하여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활동을 분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성령님을 추구하는 것을 통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마리아와 같이 사랑하게 되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은 오직 우리를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끄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론을 다루는 에베소서는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설명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로 이끌 것입니다.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2~13, 15)

그리스도께서 교회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구주시니라 (엡 5:23)

구원의 관점에서 성령님의 밖에서 안으로의 방향성은 ‘칭의(稱義, justification)’, 안에서 밖으로의 방향성은 ‘성화(聖化, sanctification)’로 설명했습니다. 오직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향한 방향성의 관점에서 보면 ‘건축(建築, edification)’입니다. 자격을 갖추고, 터를 닦고, 집을 세워 올린 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 이것이 곧 구원 그리고 생명의 성장과 변화의 관점에서 ‘칭의’와 ‘성화’고, 교회의 관점에서 보면 모퉁이 돌이요 머릿돌이신 주님과 함께 짓는 ‘건축’입니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합시다.

내 안에 오셔서 나와 함께 거주하시는 성령님. 내가 주를 향한 열정으로 방향성을 정하고 성령님은 그저 도와주실 것만 기대했던 과거를 회개합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예수님 한 분을 향한 방향성을 갖고 계신 분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선포합니다. 성령님은 매 순간 나의 의를 쳐 복종케 하시며 밖에서 안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입히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또한, 내주하셔서 안에서 밖으로 생명의 역사를 통해 변화와 성장을 가져오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내가 죽고 예수가 사는 이 사이클의 반복을 통해 제가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며 건축되기를 갈망합니다. 내 천연적 자아에서 나온 힘과 노력을 멈추고 영에서 나온 당신의 생명을 받아들이기를 갈망할 때 생명의 영은 반드시 저를 예수님께로 인도해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모든 실수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을 신뢰할 때 당신은 가장 안전하게 저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령님. 제가 자라기를 소원합니다. 도와주세요. 충분히 성숙하고, 충분히 현숙하고, 충분히 지혜롭도록 에스더와 같이 단장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
충만함이니라

– 에베소서 1:17~23 –

배경음악 작곡/연주 : 곽은기 / 제목 : 일상 / Release : 20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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