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한’ 비즈니스는 무엇인가?

1. 시대의 흐름, 착한 비즈니스와 따뜻한 자본주의

인터넷의 등장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던 정보의 권력을 대중에게 이양시켰다. 전통 매체는 무너지고 대신 소셜 미디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전 결코 접근할 수도, 알기도 어려웠던 정보마저 몇 단계의 소셜 관계를 거치면 순식간에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는 세상이다. 보는 눈이 많아졌다. 속이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앞으로 점점 더 기업은 대중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시대에 놓였다. 이런 흐름 가운데 ‘착한 비즈니스’가 등장했다. 시대적 흐름이다. 굳이 교회가 아니더라도 기업이 좋은 일을 많이 하려 한다. 착하지 않은 비즈니스는 더는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를 향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사회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느냐 아니면 기업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또한 정부가 개입하느냐 아니면 시장에 맡기느냐에 따라 좌와 우를 넘나들며 거듭 성장해 왔다. 자본주의 1.0, 2.0 이런 숫자를 붙여가며 말이다. 이런 단계별 변화는 자본주의 변화와 그 궤적을 같이 한다. 애덤 스미스의 작은 국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대표되는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 1.0을 지나, 세계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큰 국가, 정부의 시장 개입을 주장한 자본주의 2.0(케인즈주의)이 등장했고, 레이건과 대처의 신자유주의로 자본주의 3.0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00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본주의 4.0이 등장했고 지금은 인간 중심의 자본주의, 따뜻한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자본주의 5.0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자본주의 역사적 흐름 가운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란 용어가 나왔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넘어 기업의 이익 창출을 사회적 가치 창출과 맞물려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마이클 포터 교수는 이것을 ‘공유가치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이라 불렀다. 마이클 포터 교수가 CSV 개념을 이론적으로 주장하기 이전부터 사회적 임팩트(Social Impact)를 창출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임팩트 비즈니스’ 시도는 지속해서 있었다.

공유가치창출(CSV)이나 임팩트 비즈니스 모두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은 기업이 담당하고, 사회적 가치 창출은 비영리 기관이나 정부가 담당하려는 이원론(二元論)적 사고를 배척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조하던 시기에는 기업의 ‘기업윤리, 지속경영, 사회공헌’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3대 요소는 단순한 책임이 아니라 의무를 포함한 ‘책무’라고 봐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공유가치창출(CSV)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전자가 기업의 의무적이고 수동적인 기업의 책무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면, 후자는 기업의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기업의 의지로 본다. 공유가치창출(CSV) 혹은 임팩트 비즈니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소극적 의무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비즈니스 기회와 혁신 아이디어를 발굴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사회적 가치 창출과 기업의 경제적 가치 창출 양쪽의 공유 가치(Shared Value)를 창출하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이 말은 기업의 주요 예산과 자원을 이 부분에 투입함을 의미한다.

이 영역에 많은 크리스천이 보이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비즈니스를 통해 구현하려는 착한 비즈니스를 꿈꾸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도전처럼 보인다. 이런 흐름 뒤에 이 모든 것을 붙들고 계신 역사를 주관하는 주님의 손이 느껴진다. 기업이 기업만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생각하고, 사회 문제를 생각하고, 소외계층을 생각한다는 것. 너무 귀하고 감사한 일이다. 이 흐름은 더 발전해 가야 한다. 이 분야에 더 많은 크리스천이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기업이 선하고 착한 것을 추구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칭찬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2. 선한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착한(good) 비즈니스는 무엇인가? 선한(good) 비즈니스는 무엇인가? 좋은(good) 비즈니스는 무엇인가? 착한 것, 선한 것, 좋은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 (good works)’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에베소서 2:10 上, 개역개정)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 (good works)’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다. 법인(法人)은 인격체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개인(야곱으로서의 이스라엘)과 단체(나라로서의 이스라엘)는 하나다. 개인에게 적용 가능한 모델을 확장하면 단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우리의 존재 목적이 ‘선한 일 (good works)’을 위한 것이라면 기업의 존재 목적 역시 ‘선한 비즈니스 (good business)’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선한, 좋은 (good)’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두 가지가 있다. ‘아가토스’와 ‘칼로스’다. 똑같이 선하고, 좋고, 아름다운 것을 뜻하는 단어지만 ‘아가토스’는 보다 내면적인 것에, ‘칼로스’는 좀 더 외면적인 것에 사용한다.

읽어보기
나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 사용한 ‘선한(good)’은 ‘아가토스’다. ‘아가토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토브’를 사용한다. 하나님은 ‘토브’란 단어를 언제 사용하시는가?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토브)… (창세기 1:4)

위 창세기 말씀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하신 것은 창조의 결과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일치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 ‘토브’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자신이 세우신 목적과 계획과 뜻에 일치했을 때다. 사람들이 볼 때 아무리 선한 비즈니스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감동할 만한 탁월한 사회적 결과를 만들었을지라도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아가토스/토브) 일’이 아닐 수 있다. ‘선(善)’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3. 철학과 성경적 관점에서의 선(善)

잠시 철학 얘기를 해보자. 철학은 크게 존재론(ontology, 存在論), 인식론(epistemology, 認識論), 윤리학(ethics, 倫理學), 미학(aesthetics, 美學)을 다룬다. 존재론이나 인식론은 진(眞)을, 윤리학은 선(善)을, 미학은 미(美)를 다룬다. 철학은 결국 ‘진(眞) 선(善) 미(美)’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수사학, 문법, 수학, 음악, 철학, 자연의 역사 그리고 체육을 통해 사람됨의 본질에 도달하여 탁월한 삶, 이상적인 삶을 살고자 했다. 이들은 진(眞) 선(善) 미(美)의 삶을 추구했다. 이것을 통해 탁월한 삶의 최고 경지인 ‘아레테(Arete, 탁월함-덕)’에 이르기를 갈망했다. 진선미(眞善美) 구조는 그리스 철학의 핵심 프레임이었다. 하나님을 몰라도 만물 안에 깃든 하나님의 경륜(經綸)을 그들도 어느 정도 깨달은 것이다. 비록 영적인 통찰이 빠져있지만, 그림자로 비친 하나님의 설계 구조를 진선미(眞善美) 프레임으로 잘 녹여냈다. 세상에 속한 철학자와 인문학자도 묻는다. 무엇이 선한가(善)? 무엇이 아름다운가(美)? 그들의 대답 역시 마찬가지다. 외적인 아름다움이 진짜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거다. 드러난 선함이 진짜 선함이 아니라는 거다. 진(眞)에 부합한 것만이 선(善)하고 그로부터 정렬되어 나온 결과가 미(美)다. 그래서 그리스 철학과 교육에서는 ‘칼로카가티아’를 추구했다. 미(美)에 해당하는 ‘칼로스(칼론)’와 선(善)에 해당하는 ‘아가토스(아가톤)’를 결합한 단어로 ‘아름답고 좋은 것’을 의미한다. ‘칼로카가티아’는 ‘진선미’의 온전한 하나 됨과 정렬에서 온 결과다. 하나님을 모르는 철학자들도 지극한 선과 지극한 미를 추구할 때 그것이 진선미(眞善美)의 온전한 정렬로부터 와야 하는 것을 깨달은 거다.

진선미-영혼몸-아레테

진선미 프레임은 영혼몸 프레임과 맞닿아 있다. 컨설팅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법의 하나인 why-how-what 프레임과도 맞닿아 있다.

진리의 근원은 무엇인가? 말씀이다. 예수님은 이 말씀이 곧 생명이요 영이라고 말씀하셨다. 진리와 영이 맞닿는 이유다. 선한 비즈니스를 논하려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를 논하기 전에 진리와 맞닿아 있는가, 생명과 영에 맞닿아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먼저다. 거듭난 비즈니스, 영적인(프뉴마티코스) 비즈니스의 핵심이 무엇인가? 모든 비즈니스 영역이 영에 의해 통제되는가(프뉴마티코스, spirit-controlled) 즉 진리에 정렬되는가, 말씀에 정렬되는가, 생명에 정렬되는가, 영에 정렬되는가다. 선한 것이 먼저가 아니라 생명이 먼저다.

진리와 연결되는 것이 영이다. 이것은 존재의 근원이다. 그래서 철학에서는 ‘진(眞)’을 추구할 때 가장 먼저 질문하는 것이 ‘나는 누구인가? (who)’다. 이것을 다르게 질문하면 ‘나는 왜 존재하는가? (why)’다. 이 질문을 다루는 철학의 분야가 바로 존재론과 인식론이다. 이 부분을 기업에서는 ‘사명 즉 존재 이유(Mission – why)’라고 부른다. 말씀과 철학적 배경을 갖고 선한 비즈니스를 얘기하자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탁월한 사회적 결과를 만드는 것이 선한 비즈니스의 기준이 아니다. 비즈니스의 모든 영역이 사명(Mission, 존재 이유-why)에 일치하는가, 사명에 정렬되는가, 사명에 영향을 받는가가 기준이다. 신앙적인 관점에서는 비즈니스의 모든 영역이 존재이유의 근원인 영에 정렬되는가, 영향을 받는가가 기준이다. 이 사명(부르심, Calling) 안에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과 뜻이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 일치한 결과를 볼 때 하나님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토브, 아가토스)고 하신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맞닿은 비즈니스 과정과 결과만이 선하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일관성(一貫性)의 선물이 바로 ‘다움’이다. 이 ‘다움’은 그리스 철학의 ‘아레테(탁월함, 덕)’와 비슷하다. ‘자기다움’의 핵심이 무엇인가? 내 모든 활동과 그에 따른 결과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과 그 질문에 따른 치열한 고민에서 나온 일관성에 기인한 것이다. 이 일관성은 진선미의 정렬에서 나온 결과다. 이것은 기업도 마찬가지다. 영적인 여부를 떠나 우리가 애플답다, 코카콜라답다고 하는 것은 적어도 그 브랜드 정체성(identity, 나는 누구인가)이 명확한 것을 의미한다. 물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거듭난 비즈니스는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명의 근원인 하나님의 영에 의해 통제되려는 치열한 투쟁(struggle)에서 온 일관성(一貫性)을 고민해야 한다.

참고로 ‘진(眞)’이후 ‘선(善)’을 추구할 때 질문하는 것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how)’이고 이 부분을 다루는 철학 분야가 윤리학이다. ‘진(眞)’과 ‘선(善)’ 이후 ‘미(美)’를 추구할 때 질문하는 것이 ‘나는 이 세상에 어떤 아름다운 결과를 남길 것인가? (what)’이고 이 부분을 다루는 철학 분야가 미학이다. 바로 이 질문들. 즉, 1) 나는 누구인가(who)-나는 왜 존재하는가(why), 2)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how), 3)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what)와 같은 질문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세상을 살면서 가장 근본적으로 묻는 것들이고 이것을 깨달으려는 추구가 철학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그 어떤 탁월한 철학적 대답도 진리의 근원이자 영원(永遠)과 연결된 ‘영(말씀, 생명)’을 놓치면 그 끝은 모두 허무(虛無)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허무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며 영원하다.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것. 분명 귀하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한 ‘선한 비즈니스’를 다루려면 기업의 모든 활동이 ‘나는 누구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에서 온 것인지 자문해야 한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더 나아가 기업의 모든 활동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 일을 왜 하는가?’에 대한 성령님의 계시에 날마다 열려 있고 교정받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에 의해 통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정의한 ‘선한 것’이 맞겠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것’이 맞겠는가? 당연하다. 그렇다면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먼저다.

4. ‘선(善)한 것’을 택한 베다니 마리아

이 부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드러낸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를 살펴보자.

예수님이 마르다가 사는 마을에 들어갔을 때 마르다가 자기 집으로 주님을 영접했다. 마르다는 주님을 섬기고 싶었다. 먼 길에서 오신 주님이 시장하실 거로 생각하여 음식 준비로 바빴다. 마음도 분주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발 앞에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내용이다. 마르다가 주님을 섬기려는 마음과 활동이 선한가 선하지 않은가? 사람의 기준에서 보면 선하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언니 마르다를 돕지 않고 주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던 마리아는 선한가 선하지 않은가? 선한지 아닌지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사람들 기준으로는 시선이 곱지 않을 수 있다. 마르다는 땀을 흘렸고, 마리아는 쉬었다. 하지만 주님의 평가는 달랐다. 마리아가 ‘선(善)한(아가토스, 토브) 것’을 택하였다고 말씀하셨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아가토스)’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 :42)

마르다는 자기 관점의 ‘선(善)한 것’을 택했다. 하지만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고 계신 주님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에 관해 얘기하실 때 이해하지 못했다. 때가 되어 하늘의 비밀을 얘기하시기 시작했지만, 모두가 이해하지 못했다. 주님은 마음 안에 있는 얘기를 들어 줄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마리아는 달랐다. 사람의 기준에 좋아 보이는 것을 위해 땀 흘리기 전에 주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먼저였다. 사람들의 비난이 있을지라도 주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먼저였다.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마리아가 어떤 얘기를 들었을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마리아는 주님의 마음을 알았다. 그렇기에 유월절 엿새 전 그 어떤 누구도 예수님의 죽음을 예비하지 못했을 때 마리아는 자신의 결혼을 위해 준비했던 나드 옥합을 깨뜨린다. 인생을 주님께 드린 거다. 바른 들음이 바른 행동을 가져 왔다. 주님은 자신의 발 앞에서 마리아가 보낸 시간이 거룩한 낭비의 시간임을 아셨다. 자신의 죽음을 예비할 가장 최고의 ‘선(善)한(아가토스, 토브) 것’이 마리아 가운데 움트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은 다르다. 무엇에 맞출 것인가?

바깥뜰에서의 수고와 섬김은 사람들 눈에 잘 띈다. 누가 잘 하는지 잘 보이는 영역이다. 하지만 성소가 있는 안쪽으로 들어갈 수록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어떤 사람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지 못한다. 그 가운데 섬겨야 한다. 가장 안쪽인 지성소에 들어가면 오직 하나님 한 분만 그 섬김을 아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수 있다. 비즈니스도 영적인 성장을 거듭할 수록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과 상관없이 오직 사명으로 서야할 때를 만난다. 비즈니스의 중심이 바깥뜰에 머물지, 지성소를 향할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사람들 눈에 잘 띄는 영역에서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것인가, 사람들 눈에 전혀 띄지 않더라도 오직 하나님 한 분의 칭찬에 만족할 것인가. 전자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중심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의 문제다.

비즈니스 영역에 마리아가 선다면 어떤 좋은 편을 택했을까? 사람의 시선을 의식했을지 아니면 내가 선 땅을 향한 주님의 갈망에 먼저 귀를 기울이려 했을지. 우리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마르다처럼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느라
너무 바빠
그리스도를 사랑할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위해
일해 줄 사람보다
자기와 함께 할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신다.
수고는
사랑을 대체할 수 없다.

Like Martha,
we can be so busy
working for Christ
that we have no time
to love Him.
Christ is more concerned about
what we do with Him
than for Him.
Labor is
no substitute for love.

– 워렌 위어스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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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
Gim
1 day ago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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