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유일한 직업은 제사장이다

1. 거듭난 자에게 있어 유일한 직업은 제사장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직업종류만 2만여 종이 넘는다. 의사, 변호사, 마케터, 디자이너, 기획자, 경영인, 교사, 프리랜서 등 하나하나 다 셀 수가 없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 모두가 귀하다. 하지만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이 모든 직업은 표면적 직업에 불과하다. 적어도 거듭난 자에게 있어서는 그렇다. 거듭난 자에게 있어 유일한 직업은 제사장이다. 표면적으로 디자이너지만 정확하게는 제사장으로서 디자인 영역을 섬기는 자여야 한다. 명함에는 어떤 회사의 대표이사라고 적었을지 모르지만 정확하게는 제사장으로서 그 회사를 대표하여 섬기는 자여야 한다.

직업을 뜻하는 영어 단어(Job, Career, Work, Occupation, Profession, Vocation)는 많다. 이중 가장 성경적 용어는 ‘Vocation(보케이션)’. Vocation을 ‘직업’으로 번역을 많이 하지만 원 의미는 천직(天職), 소명(召命, Calling)이다. Vocation의 어원은 Voice(목소리). 소명(Vocation)은 내가 추구해야 할 어떤 목표가 아닌, 내면에서 부르는 소리(Voice)다. 소명은 의지에서 나오지 않고, 듣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소명 즉 부르심(Calling)은 부르는 자(Caller)가 있음을 전제로 한다. 부르는 자의 소리에 귀를 가장 잘 기울이고, 부르는 자를 마음 다해 섬긴 자가 누구였는가? 바로 제사장이다.

2. ‘아보다’, 일과 예배는 하나다

제사장에게 있어 이런 섬김(to serve)은 예배(service)이자 곧 일(service)이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아보다’는 ‘일(work)’로도 번역을 하고 ‘예배(worship)’로도 번역을 한다. 한국어로 번역할 때 ‘아보다’를 ‘일’과 ‘예배’로 구분하여 번역했지만 히브리어 단어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계시하신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예배’와 ‘일’은 원래가 하나다. ‘아보다’는 노동으로서의 일이 아닌 섬김(to serve)으로서의 일(service)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보다가 하나님을 향한 섬김으로 나타날 때는 ‘예배(service)’로 번역을 하고, 사람을 향한 섬김으로 나타날 때는 ‘일(service)’로 번역을 한다. 헬라니즘 문화에 따른 영향으로 예배와 일을 이원론적으로 분리하여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헤브라이즘은 명백히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사람을 섬기는 것이 일이요 예배임을 강조한다. 즉 하나다. 결코, 분리할 수 없다. 성경적 관점에서 Vocation은 부르신 자리에 있는 거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유니크한 달란트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섬기는 일을 하는 위치에 있는 것. 그것이 Vocation이다. 이렇게 자신만의 가장 고유한 사명(Mission)을 깨닫고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섬기는 모든 사람을 우리는 감히 진정한 사역자(Missionary, 선교사)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 아니겠는가? 예수님은 표면적으로 목수였다. 하지만 그분의 진짜 직업은 위대한 대제사장이었다.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겼다. 그분이 하신 모든 일(아보다)은 예배(아보다)였다.

전문적인 기획자가 있었다. 세상에서 인정받는 기획자였다. 어느 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났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과 주님을 위한 일 사이의 갈등이 찾아왔다. 자신이 하던 일을 내려놓고 신학교를 가거나 타지에 선교하러 나가는 것이 진짜 주님을 위한 일이 아닌가란 생각 때문이다. 주님을 너무 사랑해서 나온 생각이다. 이 사람 안에는 이미 성과 속을 구분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원론적 생각이다. 거듭난 자에게 있어 유일한 직업은 제사장 하나다. 이 사람에게 있어 부족한 것은 제사장적 관점이었다. 세상에서 인정받을 만큼 기획력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고유한 달란트일 확률이 높다. 만일 이 사람이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여 섬기는 것(to serve)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에게 허락하신 기획력이란 달란트로 사람과 세상을 섬길 수(to serve) 있다면 그 일(아보다, service)은 진정한 예배(아보다, service)다. 과정이나 결과에 어떤 십자가 표시가 없어도, 직접 하나님을 드러내지 않아도 그 일은 예배다.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섬겼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아보다의 정신으로 성장하며 일과 예배를 결코 분리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 자신의 사명(Mission)을 자기 일에서 발견했다. 자신이 밟고 있는 땅이 곧 하나님이 부르신 천직(天職, Vocation)임을 안 것이다. 자신에게 허락하신 기획력이란 달란트로 이 세상을 좀 더 이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왔다. 그리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는 것과 같은 태도를 갖고 자기 일로 세상을 섬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신의 사명(Mission)을 깨달아 부르심의 자리에 선 이 사람은 가장 훌륭한 선교사(Missionary)다. 이 사람이야말로 제사장으로서 자신의 기획력으로 세상을 섬기는 진정한 예배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3. 제사장만이 ‘아보다’할 수 있다

예수님은 율법을 두 가지로 압축했다. 하나님을 사랑(Passion for God)하고, 네 이웃을 사랑(Compassion for People)하라는 것.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섬기는 것이 ‘아보다(예배, service)’고, 이와 같은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는 것 역시 ‘아보다(일, service)’다. 하나다. 결코, 분리할 수 없다. 수직을 향한 것만 예배고, 수평을 향한 것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원론은 깨져야 한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기 일을 통해 나타날 때 그 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같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누구인가? 제사장이다. 이런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진심으로 섬긴다면 그 일은 제사장의 일이다. 그래서 거듭난 자에게 있어 유일한 직업은 제사장이어야 한다. 제사장만이 하늘과 땅을 잇기 때문이다. 제사장만이 자기 일을 통해 하늘의 영광을 이 땅 가운데 운반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 땅 가운데 풀어낼 수 있다.

거듭났는가? 그렇다면 비즈니스 영역에서, 가정의 영역에서, 일상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제사장적 직임을 회복해야 한다. 제사장적 기획자가 되어야 하고, 제사장적 디자이너가 되어야 하고, 제사장적 아빠가 되어야 하고, 제사장적 남편이 되어야 하고, 제사장적 상사가 되어야 하고, 제사장적 에이전시가 되어야 한다. 크리스천으로 인해 세상이 변화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진정한 제사장적 관점을 회복한 크리스천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제사장적 관점을 가진 자가 세상 중심에 서야 한다. 아보다의 정신으로 사람을 감동하게 할 때 이것이 진짜 일이요 예배임을 아는 자가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자신의 사명(Mission)을 깨달은 자가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선교사(Missionary)로 서야 한다.

4. 비즈니스 영역에 제사장이 서야 한다

비즈니스와 선교를 접목하려는 시도는 그 역사가 오래다. 킹덤 비즈니스, BAM(Business As Mission), 일터교회(Marketplace Church)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한다. 이 모든 운동과 시도는 참으로 귀하다. 더 발전해야 한다. 더 연합해야 한다. 하지만 간과하는 것이 있다.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신 제사장에 대한 주님의 마음이다. 만인 제사장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에 더는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 ‘제사장’이란 단어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창세기에 의하면 땀은 죄의 결과다. 인간의 열심과 노력을 상징한다. 그래서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지성소에서 땀을 흘릴 수 없다. 에스겔 44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양털 옷’을 입지 말라고 한다. 땀이 나기 때문이다. 대신 ‘가는 베 옷’을 입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가는 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 베 바지’를 입고 ‘땀이 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라고 한다. 즉 땀을 내게 할 만한 모든 요소를 사전에 제거한다.

15.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17. 그들이 안뜰 문에 들어올 때에나 안뜰 문과 성전 안에서 수종들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 옷을 입을 것이니 / 18. 가는 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 베 바지를 입고 땀이 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 (에스겔 44:15, 17~18)

땀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려면 사람에게서 나온 것으로 섬길 수 없다. 모든 것이 하늘로부터 받은 것으로 섬겨야 한다. 그러려면 땀을 흘려선 안 된다. 머물러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지성소의 섬김(to wait on)은 기다림(to wait on)이 우선이다. 기다리지 못할 때 이스마엘을 출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다는 땀을 흘렸다. 하지만 마리아는 주님 곁에서 기다렸다(to wait on). 그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to wait on)이었다. 그런 면에서 마리아는 제사장이었다. 사람에게서 나온 땀과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려는 것을 먼저 멈춰야 한다. 그것으론 주님을 섬길 수 없다. 지성소에서의 섬김은 땀이 없는 섬김이다. 지성소를 반환점으로 돌아 주님과 함께 세상을 향해 나갈 때 비즈니스의 바깥 뜰과 성소에서는 땀을 흘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섬김이 아니다. 비즈니스의 가장 중심부에서 사람과 세상을 섬기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것이 되려면 땀을 흘려선 안 된다. 자신에게서 나온 모든 것은 죽음을 통과해야 한다. 마르다가 아닌 마리아가 필요하다. 비즈니스 영역에 제사장이 서야 하는 이유다.

하나님을 기다려라.
그러면 그분이 일하실 것이다.
하지만 영적인 불편함 가운데
기다리지 말라.
당신 앞의 1인치 앞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기다림으로 섬기기 위해
영적 히스테리 상태로부터
우리는 충분히 떨어져 있는가?
기다린다는 것은
단순히 팔짱낀 채
앉아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입혀진 것을
행하려는 배움의 시간이다.

Wait on God and He will work,
but don’t wait in spiritual sulks
because you cannot see
an inch in front of you!
Are we detached
enough from our spiritual hysterics
to wait on God?
To wait is
not to sit with folded hands,
but to learn
to do what we are told.

– 오스왈드 챔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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