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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7일 동안 ‘하가’ 함께 해보기
함께 읽기
일상에서의 하가 실천 사례
하가는 기본적으로 암송을 전제로 한다. 길을 걸을 때, 설거지를 할 때 등의 일상에서 성경책을 펼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가의 능력은 이런 일상에서 드러난다.
다음은 ‘[실전] 7일 동안 하가 함께 해보기’를 진행하면서 일상에서 하가를 실천한 사례다.
‘[실전] 7일 동안 하가 함께 해보기’에서 사용했던 시편 16:8 말씀을 다시 보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6:8)
‘내가… 여호와를… 내가… 여호와를… 내가 여호와를… 내가… 내가…’
이렇게 말씀을 읊조리는데 갑자기 깨달음이 왔다. ‘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그렇지… 이건 나의 고백이지…’란 생각이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고백이 따라온다.
‘사랑하는 주님. 다윗이 주님을 자신 앞에 모셨듯… 바로 내가… 바로 내가… 주님을 지금 이 자리에 모십니다…’
영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려 했을 뿐인데 갑자기 ‘내가…’란 하나의 단어가 마음을 터치한 것이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주님… 바로 내가… 바로 내가… 항상, 영원토록,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언제든지… 주님을 제 앞에 모시기를 소원합니다…’
이전까지는 단순히 기록된 글자였다. 하지만 말씀을 하가하는 중에, 중얼거리는 중에, 읊조리는 중에 성령님이 ‘내가’란 하나의 단어를 통해 마음을 터치하신 순간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이 붐비는 길을 걷는 동안에도 뜨거운 임재 경험을 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말씀을 하가하는데 사람이 꾸며낸 천 마디 말보다 하나님의 영이 실린 한마디 말이 더 위력적이란 믿음이 갑자기 들어왔다. 이런 믿음이 들어오자 마음 중심이 실린 기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모시지 않고 업무 보고 준비를 했네요. 주님… 마음 중심으로 이 시간 주님을 업무 보고 자리에 모십니다. 제가 사람을 의식해 만들어 낸 지혜의 천 마디보다 주님이 함께 하신 한마디 미련한 말이 제겐 더 소중함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업무 보고 가운데 제 오른쪽에 계시사 저로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마음이 실려서였을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 안에서도 눈물로 기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감정의 쓴 물이 올라왔지만 그 쓴 물을 말씀으로 눌러 내리는 상상을 했다.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빠르고 강하게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마음이 실리지 않았다. 상기된 감정을 다스리기엔 시간이 걸리는 듯 했다. 계속 말씀을 중얼거리던 중 갑자기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가 마음을 툭 건드린다.
‘이미 주님이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시고 승리하셨는데 왜 이 혈과 육의 싸움에 휘말려 감정이 흔들려야 하지?’
이런 생각과 함께 믿음이 들어 왔다. 믿음이 나의 감정을 일으켜 세우자 이런 기도가 나왔다.
‘이 어둠의 영아.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한다.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 상에서 승리하셨고 너는 패하였다. 그 예수님이 지금 내 오른쪽에 계시다. 그러므로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신기하다. 단순히 말씀을 하가하고 그 순간 들어온 믿음으로 기도했을 뿐인데 무너지려던 감정이 온데 간데 없고 평안이 임하는 것을 경험한다.
‘사랑하는 주님. 내가 이 시간 주님을 이 아이 앞에 모십니다. 아직 신앙고백을 못하는 이 아이를 대신하여 마음 중심으로 기도합니다. 평생 이 아이 앞에 주님 모시기를 소원합니다. 이 아이 오른쪽에 계시사 모든 상황 속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사랑하는 만큼 마음 중심이 실린다. 마음이 뜨겁다. 주의 성령이 잡은 손을 타고 아이 가운데 임하는 것을 믿음으로 상상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하가할 힘이 없을 정도로 눈이 피곤하여 눈을 감고 이 구절만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에 주님은 모시지 않고 모니터만 모신 자신이 비춰졌다. 한 템포 쉬어 가려 중얼거렸던 하가 말씀인데 말씀이 내 자신을 조명한 것이다. 하가 시간은 잠깐이었지만 디자인 결과보다 중요한 것이 주님과의 동행이란 깨달음이 들어 왔다.
‘제 오른쪽에 계신 주님.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이 디자인 작업물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작업물에 당신의 생기가 흘러 들어가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을 지금 이 작업 가운데 모십니다. 당신의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시옵소서…’
이 기도와 함께 자신의 손을 모니터 쪽으로 뻗으며 성령님이 믿음의 고백을 타고 흐르기를 소망한다.
월요일 아침, 눈을 뜬다.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알람 소리, 커튼 틈으로 새어들어오는 햇살, 새소리. 그리고 연이어 들어오는 해야 할 일들, 미팅, 만나야 할 사람들… 결코 유쾌할 수 없는 분주한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기 전에 조그맣게 마음 속으로 읊조린다.‘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그렇다. 내 생각은 내가 무엇을 채울 것인가를 선택한 것으로 순식간에 채워지게 마련이다. 이 아침의 분주한 생각과 하나님을 동시에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 중 하나로 채울 수 있을 뿐이다.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을 생각하는(모시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작은 선택이 자칫 우울할 수 있는 월요일의 아침을 바꾼다. 그 결과는 기쁨이고 즐거움이고 평안이다.
2.
출근길, 좁은 지하철 안에서 이어폰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가 크게 들린다. 맞은편 중년의 신사는 쉴 새 없이 신문을 접고 펼치느라 소란스럽다. 뒷사람의 백팩은 쉴 새없이 등을 찌른다. 저도 모르게 짜증이 밀려온다. 하지만 모두들 신경이 곤두선 상태의 한 마디가 어떻게 불똥처럼 튈지 모르는 터라 내 자신이 예민해서 그런 거라 스스로 위로하며 눈을 감는다.“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문득 예수님이 내 앞에 계시면 뭐라 하실지 생각해본다. 아마도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실 것이다. 피곤하고 힘든 출근길에 선 지하철 안의 모든 이들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셨을 것이다. “아버지, 이 안의 모든 지친 이들에게 여유와 기쁨을 허락하여 주옵서서.” 그러고 나니 사람들이 달리 보인다. 짜증이 잦아든다. 내가 맨 백팩을 먼저 내려놓고 옆 사람을 위해 공간을 조금 더 내어준다. 그 사람이 고맙다는 듯 무언의 감사의 눈빛을 내게 보낸다. 달라진 것은 전혀 없지만, 또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내 앞의 하나님이 웃으신다.
3.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 뭔가를 좀 읽어보려는데 카톡이 울린다. 귀찮다. 그래도 무시할 수 없어 열어보니 아들 일로 잔뜩 속이 상한 친구의 카톡이다.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매번 교무실에 불려 다닌단다. 때린 적이 없는데도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아들 친구와 그 학부모 때문에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그저 들어준다.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지막이 시편의 말씀을 읊조린다. 친구에게 말한다. 아들에게 이렇게 전해달라고. 삼촌은 언제까지나 네 편이라고. 그리고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친구 아들에게 전해달라고 카톡을 보낸다. 카톡 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친구의 분노도 잦아들었다.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평안이 인다. 친구도, 그 아들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다.
4.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조바심이 난다. 잠시 모니터에서 손을 떼고 시편 말씀을 다이어리에 적어본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하나님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셨을까?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심각한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마음에 들어온다. 마음이 편해지니 오히려 자유로운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일에 더욱 더 몰입되는 나를 본다.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더욱 가깝게 느낀다. 만약 일의 결과가 좋다면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이다. 설사 그렇지 않다 해도 하나님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는 이유만으로도 감사할 것이다.
5.
주말 아침,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책을 읽다가 문득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의 공부하는 모습을 본다. 괜히 마음에 걸려 물어보니 시험이 다음 주라고 한다. 조금 망설이다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함께 책을 읽어주며 공부를 시작한다. 축 늘어져있던 아이의 몸에 생기가 돈다. 전화예절에 관한 글인데 남자애가 나오면 아빠가, 여자애가 나오면 딸이 읽는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시편 16편의 말씀과 지금의 내 모습이 매우 비슷하다는데 생각이 이른다. 딸은 아빠 품에서 자칫 지겨울 뻔했던 공부를 신나게 마쳤다. 아빠는 이 시간이 혼자 책을 읽는 그 시간보다 훨씬 더 만족스럽고 즐거웠음을 깨닫는다. 아마 하나님도 그러시지 않았을까?
6.
작은 어머니가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와이프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퇴근해서 와이프의 얘기를 들어보니 사촌이 돈 많이 번다는 얘기에 어머니가 발끈하신 듯 하다. 와이프는 내게 스트레스를 푼다. 세상이 둘로 쪼개지는 기분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문득 결혼식에 선물 받은 벤츠를 몰고 나타났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세상의 비교로 흔들리지 말라고. 비교의 대상은 연봉도 좋은 차도 아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의 여부라고 말씀하시는 듯 하다.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유쾌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한다. 어머니에게는 몸 건강히,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큰 효도가 아니냐 말씀드리며 문안 전화를 드린다. 비교로 인한 우울함이 그날 밤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7.
오래간만에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만났다.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 편에선 처음 만났던 때의 열정이 사라진 그 모습이 그립기도 하다. 어느새 틈틈이 비치는 흰머리가 남의 일 같지 않다. 나누는 이야기도 꿈이나 희망에 관한 이야기보다 그저 현상 유지나 하자는 쪽으로 모아진다. 만약 하나님이 자리에 함께 하셨으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셨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의 삶에 여전히 하나님이 거하고 계시는가의 여부가 아닐까.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밴드를 개설해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기로 했다. 서로를 격려하고 힘을 주고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들을 응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 오른편에 계시는 한 아직 ‘흔들릴’ 때가 아니라고 말해주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을 때
기도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 어떤 것도 하기 전에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We pray
when there’s nothing else we can do,
but God wants us
to pray before we do anything at all.
– 오스왈드 챔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