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가와 묵상은 어떻게 다른가?

하가’에 있어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다. 하가는 지식과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가의 과정에서 얻는 부산물일 뿐. 하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중심의 태도다. 말씀이신 주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이 내 안에 거하게 하고, 그 말씀이 내게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려는 태도. 이 태도가 방법을 넘어선다. 이런 전제 아래 ‘하가’를 좀 더 균형있게 살펴보기 위한 ‘SOAR’ 방법론을 살펴봤다.

방법론으로 설명하면 뭔가 복잡하다. 거창하다. 방법론은 ‘하가’의 균형을 잡아주고, ‘하가’의 폭을 넓혀주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방법론에 매일 필요가 전혀 없다. SOAR의 순서를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거나, 이 방식대로 진행하지 않으면 ‘하가’를 할 수 없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가’의 핵심은 말씀이신 주님을 먹는 것이다. 그분의 생명을 취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내 영이 풍성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방법론에 매여 양식을 누리지 못한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방법론은 생명의 양식을 풍성하게 할 도구일 뿐 결코 하가의 중심이 되어선 안된다.

1. ‘하가’는 어렵지 않다

되새김질하는 동물을 반추동물이라 부른다. ‘젖소’는 반추동물이다. 사람과 달리 위가 4개나 있다. 젖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리지 않고 최대한 먹어 둔다. 4개 위 중 첫 번째 위에 이렇게 먹은 것을 보관한다. 보관하던 음식을 입안으로 끄집어 올려 되새김질한 후 다시 다른 위로 보낸다. 젖소는 이런 과정을 반복하여 풀에 있던 진액을 영양가 있는 우유로 바꾼다. 소는 풀을 잘 먹고 다시 끄집어 올려 되새김질할 뿐인데 그 결과로 우유를 얻는다. 비유로 보자면, 풀은 말씀이다. 되새김질은 하가다. 우유는 하가의 결과다. 영양가 있는 우유란 결과를 얻으려면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하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말씀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그것을 끄집어 올려 다시 되새김질하지 않으면 그 말씀을 살아내기 어렵다. 말씀을 통해 그렇게 은혜를 받았어도 쉽게 삶이 변화되지 않는 것은 말씀을 되새김질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크리스천이 평안, 기쁨, 건강, 형통 같은 결과를 얻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유와 같은 결과는 ‘하가’의 과정을 통해서 얻는 것이 성경적 원리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되새김질하여 우유로 바꾼 말씀이다.

예를 들어보자. 운전중이다. 길이 꽉 막혔다.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하다. 그러다 신호에 걸렸다. 대기 중에 이번 주 ‘하가’ 말씀이 떠올랐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편 23편 1절 전체도 아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분만 끄집어 올려 입안에서 데굴 데굴 굴리며 되새김질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중얼거리며 ‘하가’를 하는데 불현듯 ‘그렇지 주님이 나의 목자시지… 다른 사람의 목자가 아니라 바로 <나>의 목자시지… 이 상황 마저 이끄시는 분도 바로 <나>의 목자시지… 비록 약속에 늦는다 할지라도 <나>의 목자가 이 모든 상황 마저 인도하시리라…’ 란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다. 길은 여전히 꽉 막혔는데 상황과 상관없는 평안을 경험한다. 말씀을 되새김질하여 평안이란 우유를 얻은 예다. 이것이 바로 ‘하가’의 힘이다.

‘하가’, 어렵지 않다. 말씀이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입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면 충분하다. 사실 ‘하가’는 그것이 전부다. 상황에 따라 말씀을 풀어주시는 것은 내가 아니라 성령님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면 ‘하가’가 어렵지 않다. 방법론은 도구일 뿐이다.

2. 일반 묵상과의 차이

그렇다면 ‘하가(HAGAH)’는 일반 묵상과 어떤 부분이 비슷하고 어떤 부분이 다를까?

(1) 중얼거려야 한다

‘하가’가 일반 묵상과 가장 다른 부분은 소리를 내 중얼거려야 한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하기그 from 하가)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시편 39:3)
My heart grew hot within me, and as I meditated, the fire burned; then I spoke with my tongue: (NIV)

마음 속에 불이 붙은 뜨거운 감동으로 중얼거리며 말씀을 읊조릴 때 나의 이성은 잠잠해진다. 그 중얼거리는 말씀을 재료삼아 성령님의 계시가 임할 확률이 높아진다.

(2)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어야 한다

‘하가’는 시간을 정해두고 하는 것이 아니다. QT 시간, 기도 시간, 성경을 펴 놓는 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하가’하는 말씀에 영향을 받으면 좋겠단 생각으로 하는 것이 좋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가)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8)

감동 받은 말씀을 되새김질 하지 않으면 받은 감동을 쉽게 잊어버린다. 감동을 유지할 뿐 아니라 더 큰 계시가 풀리게 하려면 그런 구절을 수시로 ‘하가’하여 입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라. 걸어 다니면서, 회의 전에, 설거지하면서, 버스 안에서, 신호 대기중에, 잠자기 전에, 일어나자마자와 같은 일상의 모든 순간이 ‘하가’할 만한 순간이다. 심지어 상대방과 대화를 하다 발생하는 짧은 공백 때도 할 수 있는 것이 ‘하가’다. 마음이 간절한 사람에게는 ‘시간’과 ‘장소’가  ‘하가’의 장벽이 될 수 없다.

(3) 암송해야 한다

일반 묵상은 암송이 필수는 아니다. 하지만 ‘하가’는 암송을 기본 전제로 한다. ‘시간’과 ‘장소’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하가’하려면 말씀을 암송하고 있는 것이 절대 유리하다. 운전하면서 성경책을 펴고 묵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암송한 말씀을 운전하면서 중얼거릴 수는 있다. 말씀을 암송하고 있으면 화장실에서도 잠깐 ‘하가’를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건널목 건너기 전 신호를 기다리면서도 말씀을 ‘하가’할 수 있다. 암송하고 있는 구절의 한 단어만 갖고도 중얼거리며 훌륭한 ‘하가’를 누릴 수 있다. 암송이 ‘하가’는 아니다. 하지만 암송은 ‘하가’의 시작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암송을 통해 토라 말씀을 세대에서 세대로 전했다. 암송은 ‘하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작 지점이다.

예수님도 암송을 많이 하셨다. 공생애 시작 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세 번 모두 신명기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다. 마귀의 공격이 있었을 때 성경책을 펴가며 말씀을 찾지 않으셨다. 암송한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다. 말씀을 암송하고 있으면 성령님이 필요한 특정 상황에서 꺼내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유리하다.

(4) 고백하고 기도해야 한다

‘하가’의 목적은 깨닫고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이 빛을 비추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목적이다. 말씀을 암송하고 일상의 삶에서 수시로 중얼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 ‘하가’하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러면 그 감동에 반응하여 고백과 기도가 절로 나온다.  말씀을 암송하면 기도할 때도 유리하다. 기도의 꽃은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말씀을 암송하고 있으면 암송한 말씀을 기도로 풀어내기가 쉽다. 이렇게 말씀을 기도로 풀어내는 것 자체가 훌륭한 ‘하가’다. 내 생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녹여 기도로 올릴 때 계시가 풀릴 확률이 높다. 이렇듯 말씀과 기도와 계시를 연결하는 것이 ‘하가’다.

(5) 깊이 사색해야 한다

‘하가’를 피상적으로 하다 보면 암송하는 것으로 끝날 때가 있다. 중얼거리다 말고 어느새 끝난다. 영의 깊은 영역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길어 올리려면 ‘하가’의 깊이도 더 깊어져야 한다. 이전 ‘하가’에서 누리던 만족으로 하나님의 깊이를 제한하면 안된다. ‘하가’의 끝은 어디일까? 하나님 마음의 거리 만큼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어느 정도 깊이일까? 영원 만큼이나 깊다. ‘하가’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고 쉽게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우리는 영원 앞에, 말씀 앞에 겸손해야 한다. 내가 조금 아는 자라고 생각했지만 영원을 머금은 말씀의 계층적 깊이를 경험할 때 그 어떤 것도 모르는 자임을 깨닫는다. ‘하가’의 삶이 깊어질 수록 더욱 그러하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말씀 조차도 ‘하가’를 하다보면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는 그 어떤 말씀도 이미 안다고 생각하며 ‘하가’를 해선 안된다. 이미 알고 있는 말씀 조차도 마치 처음 보는 말씀처럼 대해야 한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낡아지지만 성령님은 늘 새롭다. 그 성령님이 날마다 말씀으로 나를 새롭게 하기 원하신다. 이 믿음을 갖고 깊이 사색해야 한다. 이것은 말씀의 한 단어 혹은 짧은 한 문장만으로 하루 종일 ‘하가’하며 사색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 어떤 것도 그냥 기록된 말씀은 없다. 이미 안다고 생각한 것에 더 깊은 보물이 숨어있을 수 있다. ‘하가’를 통해 이런 보물을 길어 올리려면 계란 프라이같이 빠른 요리가 아닌 24시간 푹 고아야 깊은 맛이 우러나는 곰국 같은 깊은 사색이 필요하다.

(6) 감동을 기록한다

소리는 사라진다. 생각도 사라지기 쉽다. ‘하가’하며 받은 감동도 기록하지 않으면 쉽게 사라진다. ‘하가’를 진행하며 얻은 계시와 감동을 한 곳에 기록하라. 사라질 것을 한 곳에 모아두면 내 인생을 이끄신 하나님의 궤적을 그리기 쉬워진다. 모아놓은 기록을 정기적으로 살펴볼 때 의미없었던 점과 같은 기록들이 어느새 서로 연결되어 놀라운 의미를 갖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7) 감동을 나눈다

‘하가’는 소리가 있다. 소리와 소리가 만나 연결되어 증폭될 때 큰 울림을 가져 온다. 자신이 ‘하가’를 진행하며 받은 감동을 다른 사람과 나눌 때 그 감동은 배가 된다. 특별히 같은 커뮤니티에서 동일한 구절을 갖고 ‘하가’를 진행한 후 일상에서 경험한 은혜를 나눌 때 큰 유익이 있다.

주님을 묵상하는 것을 아는
배우지 못한 사람이
묵상하는 것을 모르는
많이 배운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안다.

An unschooled man who knows
how to meditate upon the Lord
has learned far more than
the man with the highest education
who does not know
how to meditate.

– Charles Stanl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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