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GAH OF THE LESSON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6:8)
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shall not be shaken. (ESV)
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shall not be shaken. (ESV)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renew their strength.
They will SOAR
on wings like eagles;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renew their strength.
They will SOAR
on wings like eagles;
다음은 ‘[실전] 7일 동안 하가 함께 해보기’를 진행한 분들의 간증 일부입니다.
언젠가 새로 산 스마트폰을 사흘만에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마침 누군가를 인터뷰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가다 화장실에 들른 참이었다. 잠깐 세면대 위에 올려둔 채로 화장실을 나섰다가 바로 돌아갔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누가 가져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바람에 약속시간에도 늦었고 인터뷰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기다렸다 큰 맘 먹고 산 스마트폰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보험에 들어 리퍼 제품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 한달 동안 나는 내내 잃어버린 핸드폰만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새 기계 특유의 향기와 광택, 손끝에서 느껴지던 유리의 감촉, 심플하면서도 화려하게 작동하는 처음 보는 다양한 앱들, 음악을 듣고 지도를 보고 문자를 보내고, 다시 누군가에게 새 폰의 장점을 줄줄이 웅변하던 그 순간의 짜릿한 기억들… 그런데 처음은 그보다 더 설레었지만, 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존재가 있다. 바로 하나님이다.
교회를 다닌 지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다. 예수님을 만나 영접하고, 신앙생활이 단순히 하나의 종교를 가지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다양한 설교와 신앙서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과 충만함이 무언지도 종종 경험했다. 때로는 치유를 위한 기도를 받기도 하고 방언으로 하는 특별한 경험을 시작한 지도 꽤 되었다. 하지만 과연 한 달 이상 하나님을 묵상하고, 기다리고, 기대하며, 때로는 나를 떠나간 듯 여겨지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스마트폰처럼 갈망한 적이 있었는지는 자신할 수가 없다. 고작 100만 원이 채 안되는 기계와 하나님을 비교하다니, 이렇게 불경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하루만 스마트폰을 잊은 채 두고 나와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하루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조바심을, 불안을, 공허함을. 하지만 하나님 없이는 1년을 살아도 그런 조바심과 허전함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다 실연이나 실직, 사업상의 어려움과 건강상의 심각한 위협, 누군가의 장례식장에 들러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이렇고 혼자 읊조리는 경험을 하곤 한다.
“과연 내게 하나님은 누구인가? 그 분은 내 일상의 삶, 혹은 인생 전체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한 주,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나를 돌아보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말씀과 묵상이 무언지를 고민했다. 데일리하가는 그것을 ‘하가’라고 불렀다. 말씀을 읽고 외우고 읊조리고 생각하고 적용하고… 오랜 신앙생활의 경험으로 나는 그것들이 대략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하나님과의 동행과 임재, 살아 움직이는 말씀, 내 삶과 세상을 바꾸는 신앙의 위력… 하지만 마치 박제처럼 굳은 내 마음은 처음부터 내게 이렇게 물었다. ‘이미 다 해본 것들이잖아. 성경말씀은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한 번이라도 네 삶을 바꾼 적이 있니? 그렇게 마음 설레던 설교와 집회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도루묵이었잖아.’ 제자훈련을 하고 전도폭발훈련을 하고 세상의 콘서트에 필적할만한 워십 찬양의 뜨거운 현장 속에서 금방이라도, 당장 내일이라도 나와 이 세상이 바뀔 것 같이 여겨졌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먹고 살고 갈등하는 일상 속으로 돌아오면 그 모든 감정들이 신기루처럼 휘발되는 경험 또한 여러번 반복해왔다. 성경공부와 암송, 필사와 큐티를 적당히 섞어놓은 듯한 ‘하가’가 과연 이런 경험들과 얼마나, 어떻게 다를까. 적어도 한 주가 지나기 전까지는 기대와 회의가 조삼모사처럼 반복되었다.
아침에 눈을 뜬다. 자주 알람소리보다 살짝 먼저 일어나 알람을 끄곤 했었다. 뭔가 하루를 재촉받는듯한 느낌이 괜히 싫어서였다. 그리고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생각들을 떨쳐내기 위해 화장실을 찾아 양치부터 하곤 했었다. 그 생각들이란 대부분 일에 대한 압박, 관계로 인한 부담, 한번에 해결책을 찾기 힘들어보이는 염려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하가’를 시작한 이후론 조금 달라졌다. 그것들이 밀려들기 전에 미리 말씀의 장벽을 치기 때문이다. 하가를 위해 암송한 말씀은 시편 16편 8절이었다. 한 구절로 이뤄진 다윗의 이 고백은 짧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언뜻 보면 시편의 다른 말씀들과 그닥 달라보이지 않는 평범한 말씀이다. 그래도 한 주 내내 읊조리다 보니 외웠다기보다는 입에 붙어버린 느낌이 들 정도였다. 마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자기 전에 양치를 하거나 샤워를 하는 것처럼.
한동안은 이 말씀의 뒤에 숨은 뜻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외워버렸다. 복잡한 생각들이 내 머리를 채우거나 압도하기 전에 미리 선을 긋는 일종의 폴리스라인 역할과 비슷했다. 그리고 조금씩 다양한 성경 버전과 배경 설명을 통해 그 숨은 뜻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대단치는 않지만 말씀을 이해하는 정도가 조금씩 깊어지기 시작했다. 하루를 살다보면 적잖게 다양한 환경과 감정의 위기를 만나곤 한다. 그때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말씀을 외우고 쓰고 읊조리고 생각하고 묵상했다. 그때마다 마음에 알 수 없는 평안이 조금씩 찾아들었다.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려고 애를 썼다. ‘항상’ 그러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것이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장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무엇보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 낭비가 아니라 그토록 하나님이 주고 싶어하시던 유익이며 복이고, 기업이며 유산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그것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본능적인 것이다. 하지만 또한 모든 문제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많은 문제들은 ‘나를 향한 나의 사랑’, 즉 자기중심적인 본능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남들보다 더 앞서기 위한 인간적인 노력,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 불편한 관계들, 나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사람과 회사와 세상을 향한 분노… 하지만 그 어디에도 하나님은 없었음을 이제는 고백해야겠다. 주일의 설교와 의례적인 기도를 상처에 급하게 붙이는 밴드처럼 가볍게 생각했음도. 나의 문제를 하나님이 나보다도 더 걱정해주고 계심을 미처 알지 못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나의 삶 전체를 계획하고 움직이고 계심은 정말로 알지 못했다. 만약 알았다면 더 매달라고 붙들었어야 했다. 그저 자기계발서와 경영서에 나오는 지침처럼 나를 위한 하나님의 위로 정도로만 생각했기에 그 이상의 변화도 없었던건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내 삶은 애초에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나은 나를 발견하고 계발하기 위한 ‘나다운’ 삶이 아니었다. 내 삶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야 했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 삶은 결국은 모두 허망한 것으로 흐른다는 것을 조금 더 절실하게 알아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하가는 느리게 느리게 방향을 전환하는 과정에 있는 큰 범선을 떠올리게 했다. 너무 급하게 방향을 바꾸면 배가 위험해진다. 조금씩 조금씩 키를 돌리는 조타수의 인내와 끈기가 필요했다. 당장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고 손을 놓으면 배는 늘 가던 방향으로 곧 돌아가곤 했다. 그래서 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쓰고 외우고 읊조리고 묵상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책장을 덮고 나면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큐티와 하가는 그점에서 분명 큰 차이가 있었다.
하가의 삶은 이처럼 나를 향해 자꾸만 돌아가는 나침반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과정이었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먼저 알아야 했다. 나보다도 더 나를 아끼고 사랑하실 뿐 아니라, 내 삶의 모든 계획과 이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신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따지고 보면 오랜 신앙 생활 동안 숱하게 들어오던 약속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혼을 넘어 나의 영에까지 다다르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은 시간과 깨달음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분리된 시간과 공간이었다. 온갖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나의 생각들, 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세상의 유혹들과 나를 떼어놓아야 했다. 생각은 절대 빈공간으로 남아있을 수 없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항창 채워져 있는 곳이 바로 생각이다. 나를 중심으로 한 세상적인 생각들이 가득한 곳에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획이 들어설 공간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자 비로소 조금씩 내 마음에 평안이 찾아들었다. 불일듯 이는 혼의 욕심을 달래고 내 영이 조금이라도 하나님께 가까이 닿기를 기도하고 간구했다. 일주일 동안 아침마다, 하루 중 틈틈히,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시간과 공간에 시편 16편의 말씀을 가져다놓았다. 하나님을 내 앞에 모셨다. 그 하나님이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하셨다.
하가를 진행하던 한 주간의 금요일 밤, 대개의 ‘불금’은 아껴두고 미뤄두었던 미드나 영화를 보곤 했다. 새벽 늦게까지 한 주 내내 아쉬웠던 뭔가를 채우기 위해 분주했지만 한 번도 마음 속 깊은 평안까지 다다른 적은 없었다. 일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을지 모르나, 몸은 조금 더 편했을지 모르나 내 마음은 그 시간에도 여전히 쉬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는 즐거운 시간으로 변했다. 한 주 내내 곱씹었던 하나님의 말씀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간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러한 시간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심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마음 깊은 속에 있는 중심, 즉 나의 영을 비로소 쉬게 만든다.
오래전 읽었던 다양한 신앙서적들 속의 저자들이 바로 지금의 생각과 같은 말을 하고 있음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기도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묵상도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염려와 불안은 다름 아닌 불신앙이고 불순종이다.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순간 비로소 하나님이 태초 전부터 계획하고 지으신 ‘진짜’ 나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내가 일하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그 일의 결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를 내려놓은 하나님 중심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얻은 자존감은 상황의 어떠함과 상관없는 깊은 평안과 기쁨과 자유함으로 인도한다. 중요한 것은 한 가지다. 하나님이 그런 나를 가장 기뻐하시며 그러한 시간을 가장 즐거워하신다는 것, 그제서야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무실에서 8개월 가까이 키워오던 화분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윤기가 흐르던 녹색 빛의 잎이 어느 순간 속에서부터 노랗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검색을 통해 이 화분이 원래는 실내에서 키우는 식물이 아님을 알아냈다. 화분을 사무실 실외기가 있는 바깥 그늘에 옮겨놓고 물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 만에 화분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시냇가에 옮겨 심지 않으면 우리는 곧 (영적인 의미에서) 죽을 수 밖에 없다. 당장은 생동감 있어 보일지 모르나 하나님을 떠난 우리는 뿌리 없는, 물이 말라버린 사막의 식물과도 같다. 하지만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는 삶은 지금의 모습과 상관없이 살아있는 자다. 그 안의 영이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하가는 우리의 주변을 물댄 동산으로 만들어가는 작업과 닮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비처럼 내리면 그 물을 담아놓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물이 매일의 순간순간마다 뿌리부터 잎사귀까지 바로 다다를 수 있도록 나의 주위를 둘러싼 넓은 동산. 잎이 푸르러지고 꽃이 필 때까지 우리는 그 곳에서 어떤 열매가 맺힐지 미리 알 수가 없다. 다만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뤄질 것이란 믿음이다. 내가 할 일은 오직 그 충만한 물기운의 은혜를 누리는 것 뿐이다.
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뻗어서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욥 14:7~9)
하가 사례 모음
지금까지 소개했던 하가 사례들을 한 곳에 모아 봤습니다. 다시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 아이콘을 클릭하여 펼쳐 보세요!
하가(HAGAH) 실전 - 가나안을 향한 하나님의 전략(2)
WEEK 2 - [실전] 7일 동안 ‘하가’ 함께 해보기(HAGAH)
DAY 1 – 개관DAY 2 – 타미드, 샤바
DAY 3 – 하싸, 바라크, 야아츠
DAY 4 – 로드십(Lordship), 토브
DAY 5 – 시편 16편과 사도행전 2장(1), 카보드
DAY 6 – 시편 16편과 사도행전 2장(2), 야다, 예수님의 투영
DAY 7 – 리뷰
APPENDIX
나에게 하가란...복있는 사람...
"WEEK 1 – SOAR, 하가를 바라보는 관점(觀點)"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