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가란 무엇인가?
하가의 유익은 무엇인가?
하가의 중요한 태도는 무엇인가?
하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
- 하가, 어떻게 할 것인가? – HOW HAGAH
- 하가 방법론, SOAR – 헬핑 존 쏘어(Helping John SOAR)
- HOW SOAR(1) – Still & Sync | HOW SOAR(2) – Outline & Observe | HOW SOAR(3) – Align & Author | HOW SOAR(4) – Reflect & Respond
[실전] 7일 동안 ‘하가’ 함께 해보기
함께 읽기
나를 알려면 창조주 하나님을 먼저 알아야 한다. 피조물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려면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감춰진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이 계시다. 계시가 있으려면 내 생각, 내 기호, 내 입장, 내 취향, 내 세계관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합리성이란 이성적 틀이 성령님의 계시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내 자아의 힘을 빼는 과정을 성경은 ‘가만히 있어’로 표현한다. 가만히 있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묵상이다. 가만히, 잠잠히 있는 것은 말씀 앞에 내 생각을 복종케 하는 과정이다. 나는 감소하고, 말씀은 증가하는 것이 묵상의 목적이자 방향이다. 바로 이 목적과 방향에 맞는 묵상 방법이 ‘하가(HAGAH)’다.
세상은 ‘나’를 발견하기 위해 ‘나’에 대해 더 많이 알려 하지만, 크리스천은 ‘나’를 발견하기 위해 오히려 ‘나’를 감소시켜야 한다. 이에 도움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는 ‘하가’와 ‘저널링’이다. 그렇다면 ‘하가’를 일상에서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좋을까? 시편 16편 8절 한 절 말씀으로 일주일 동안 ‘하가’의 실제를 경험해 보자. ‘하가’의 구체적인 방법을 아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6:8)
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shall not be shaken. (ESV)
먼저 시편 16:8 말씀을 반복해서 읽고, 기록하며, 암기해 보라.
일반 묵상과 다른 ‘하가’의 가장 큰 특징은 1) 소리내어 중얼거리고 2) 암기하고 3)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어야 하고 4) 말씀을 기도와 고백으로 바꿔야 하며 5) 말씀을 계속 되새김질 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깊은 사색을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하가’를 진행할 때 1) 하가를 풍요롭게 할 재료를 확보하는 과정과 2) 확보한 재료를 삶 속에서 녹여내는 과정을 나눠 생각해 보자.
1. 하가를 풍요롭게 할 재료 확보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밤낮으로 묵상(하가)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다른 말로 1) 언제(when) 2) 어디서나(where) 3) 어떤 방법(how)을 사용해서라도 ‘묵상(하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시간, 장소,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가를 최우선 순위로 두는 거다. 이것이 바로 가나안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려주신 하나님의 전략이었다. 이렇게 말씀을 하가하려면 재료가 중요하다. 상상해 보자. 딱딱한 껍질 같은 것으로 둘러싸인 기록된 말씀이 있다. 그 말씀을 입안에서 중얼거리고 굴려가며 녹인다. 어느 순간 말씀안에 있는 생명의 영이 연고처럼 흘러 나와 심령을 바른다. 그 심령을 바른 말씀이 나를 살린다. 얼마나 멋진가?
말씀 안에 감춰진 생명이 빛을 발하려면 가리고 있던 껍질을 벗겨야 한다. 그러려면 그 껍질을 벗길 수 있는 재료와 도구가 필요하다. 요리는 성령님이 하지만 재료와 도구 준비는 우리 몫이다. 아무리 훌륭한 요리사라도 도구와 요리할 재료가 빈약하면 최고의 요리를 선보이기 어렵다.
일주일 동안 하가 할 시편 16:8 말씀을 예로 들어 보자. 시편 16:8 말씀만 외우고 묵상해도 말씀 자체가 주는 힘이 있어 좋다. 하지만 반나절, 하루만 지나도 계속 같은 말씀을 암송하며 묵상하는 것이 식상하다. 맛있는 김치찌개도 매일 먹으면 질린다. 이 말씀을 어떻게 입에서 떨어뜨리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지치지 않게 주야로 묵상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좀 더 풍성히 요리할 수 있는 재료가 필요하다. 시편 16편을 기록한 사람은 누구인지, 기록할 때의 상황은 어땠는지, 그 때 저자의 마음은 어땠는지, 시편 16:8은 어떤 맥락 가운데 나온건지, 또 다른 성경 버전에서는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각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 구절과 연관있는 또 다른 구절은 없는지 등의 재료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하가의 질이 다를 수 있다. 다양한 재료를 준비하고 있다면 성령님은 그 재료를 이용하여 질리지 않는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실 수 있다. 성령님의 풍성한 감동은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게 해준다.
하가는 시간, 장소, 방법 등 어떤 상황도 가리지 않고 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또한 하가를 풍성하게 해줄 재료 준비를 위한 별도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준비한 재료로 운전 중에, 걸어다니면서, 설거지하면서, 회의하는 중간 중간 등 일상의 모든 순간에 하가를 시도해 보라. 이런 과정을 반복함에 따라 인생을 바꿀만한 계시를 한 순간 만나기도 한다.
주 재료는 기록된 말씀 하나로 족하다. 성령님은 그 재료만으로도로 능히 사람을 변화시키실 수 있다.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균형있게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재료가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
2. 확보한 재료를 삶 속에서 녹여내는 과정
하가의 핵심은 말씀을 입에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면서(Shadowing)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성령님께 주도권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가는 특정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될 때 마다, 특정 장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든, 지겹거나 하기 싫다고 생각이 들 때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이런 훈련 과정을 통해 여호수아처럼 말씀을 입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주야로 하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신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래야 내 생각으로 살지 않고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생각과 지혜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1. 언제든(when) 어디서나(where) – 시간과 장소 상관 없이
1) 일어나자 마자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은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전환이다. 매일 아침 눈 뜰 때마다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하루가 창조되어 눈 앞에 나타난다. 얼마나 경이로운가? 이 하루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주님께 아침마다 감사와 찬양으로 높여 드리자. 모든 과거의 부정적인 것은 다 떨쳐 버리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아멘.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말씀을 중얼거리며 하루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지. 내 한숨이 밖으로 나오기 전에 말씀의 숨이 세상을 향해 던져지게 하는 것은 어떨지. 이번 주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편 16:8 말씀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를 반복해서 중얼거리며 하루를 시작해 보자. 이 훈련을 몇 일 하고 나면 말씀을 중얼거리며 깨는 자신을 보고 놀랄 것이다. 말씀이신 주님과 함께 잠에서 깨는 것, 생각만 해도 행복하지 않은가?
2) 잠자기 전에
오늘 하루가 행복했나? 아니면 힘들었나? 좋은 것들만 추려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수치와 낙망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을 찬양하자. 잠자기 전 모든 것을 주님의 발 앞에 내려 놓자. 그날의 수고와 근심과 염려는 물론 그날의 은혜와 기쁨과 영광까지도. 잠자기 전 나만의 ‘리츄얼(ritual)’을 계발하는 것은 어떨까? 하루를 마감하며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염려가 나를 붙들지 않도록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리셋(reset)시킨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새로운 날에 대한 소망을 품는다. 틀림없이 그날 그날 족한 은혜를 주실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한 주간의 말씀을 ‘하가’하며 잠들어 보라. 복잡한 생각과 함께 잠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중얼거리며 잠드는거다. 말씀이신 주님과 함께 잠들고 꿈에서도 말씀이신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시편 내용을 보면 다윗은 이렇게 말씀을 읊조리며 잠이 든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 말씀의 능력을 경험해 보라. 잠을 자는 동안에 상한 마음과 몸까지 치유시키실 주님을 기대해 보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3) 걸어다닐 때
‘하가’를 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걸어다닐 때다. 말씀을 암기하는 이유는 성경암송대회에 나가기 위함이 아니다. 성경책을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말씀 자체를 중얼거리면서 묵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퇴근할 때, 사람을 만나러 나갈 때, 식사하러 가면서, 산책하면서 암기한 말씀을 중얼거리고, 읊조리며, ‘하가’해 보라. 발걸음 리듬에 맞춰 ‘하가’할 때 심장 박동과 함께 혈액을 타고 말씀이 흐르는 것을 상상해 보라. 말씀에서 갓 짠 보혈이 내 천연적 피를 덮을 것이다. 걸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혼자가 아님을 의식하라. 말씀이신 주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기 원하신다. 걸으면서 ‘하가’를 한다는 것은 말씀이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업무 중, 집안 일 중, 공부 중일 때 일부러라도 잠시 짬을 내 걷는 시간을 가져보라. 목적을 정해 두고 바쁘게 걷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말씀이신 주님과 교제하고 싶은 갈망으로 걸어보라. 말씀을 입에 올린다. ‘저는 정말 주님과 친밀히 교제하고 싶어요. 주님을 더 알고 싶어요.’란 마음으로 입에 올린 말씀을 중얼 거린다. 말씀을 중얼 거릴 때 영적인 에너지가 흘러 나온다. 걸으면서 ‘하가’를 하는 것은 몸과 영혼 모두에 건강이 될 것이다.
4) 미팅 직전에
하루에도 수 많은 만남이 있다. 믿는 사람과의 미팅일 수도, 믿지 않는 사람과의 미팅일 수도 있고, 공식적인 미팅일 수도, 편한 사람들과의 미팅일 수도 있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의 모든 순간 순간에 부모는 관심을 기울인다. 주님도 이런 마음으로 나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 내가 만나는 모든 만남에도 관심을 갖고 계신다. 모든 만남 전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주님… 제가 주님을 이 만남에 모십니다…’라고 하가하며 고백해 보라. 이렇게 말씀을 하가하고 기도하는데 10초도 안걸린다. 영의 영역은 내가 믿는 만큼 실재다. 짧은 고백이지만 주님은 들으시고 그 만남 가운데 함께 하신다. 주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5) 일하는 중간 중간에
일에 몰입해 있으면 성령님이 개입할 틈이 없다. 원고를 쓰다가도, 문서 작업을 하다가도, 디자인에 몰두 하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아이들을 가르치다가도 중간 중간 말씀을 떠올려 보자. 이 짧은 순간은 사실 몇 초도 되지 않는다. 내 물리적인 눈으로는 여전히 컴퓨터를 보고 있고, 그릇을 보고 있고, 아이들을 보고 있지만 마음의 눈은 언제든 주님을 향할 수 있다. ‘주님을 이 자리에 모십니다’란 고백은 아주 순간적이지만 영원(永遠)과 맞닿게 한다. 하가를 통해 일상의 멈춤(pause) 버튼을 누를 수 있다면 주님이 내 시간의 보좌 위에 ‘주(主, Lord)’로 좌정하신다. 주를 향한 마음의 갈망을 품고 이 멈춤의 시간을 훈련한다면 일하는 중간 중간 하가를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음을 깨닫는다. 이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의 ‘주되심(Lordship)’을 인정하는 태도를 배운다.
6) 식사하면서
식사 전후는 ‘하가’하기 좋은 시간이다. 예수님은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자신과 관계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말씀은 영의 양식이다. 육신의 욕구를 채울 때 영의 갈망도 함께 떠올리는 훈련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먹은 것이 곧 육신의 ‘나’다(You are what you eat!). 무엇을 먹는지가 내 육신의 성분을 결정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후 하나님은 애굽의 음식에 길들여진 그들의 식성을 다루셨다. 그리고 광야 생활 내내 ‘말씀’을 상징하는 ‘만나’를 먹게 하셨다. 육은 땅의 음식이 필요하지만, 영은 하늘의 음식이 필요하다. 우리의 속사람이 말씀의 능력으로 강건해질 필요가 있다. 식사 시간마다 ‘하가’하는 말씀이 나를 둘러싼 모든 염려와 스트레스를 삼켜 버리는 상상을 해보라. 식사 전 빵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하루에 몇 번이나 기도하는가? 식사 시간 때 만큼은 ‘하가’를 놓치지 말자. 짧은 시간이라도 ‘하가’하는 말씀을 통해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 달라고 기도하라. 수련회 가면 식사 전 성경암송을 해야 밥을 먹었다. 이제는 시켜서가 아니라 주님을 너무 사랑하여 자원하는 기쁨으로 식사 전 하가를 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해보는 것은 어떨지?
7) 어려운 상황 중에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든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13)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문제 넘어 계신 주님을 바라 보라.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볼 때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으나 자신을 삼킬 것 같은 파도를 바라 볼 때 물 속에 빠지고 말았다. 주님은 물 위에 계신다. 나를 삼킬 것 같은 문제 위에 계신다. 문제를 바라보면 문제에 빠지지만 주님을 바라보면 그 문제 위를 걸을 수 있다. 주님을 바라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말씀이신 주님을 하가하는 것이다. 말씀을 하가하며 영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라. 불안과 염려와 걱정을 제압하시며 그 위를 걷고 계신 주님을 바라보라. 문제를 내가 해결하려 하면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하지만 그 문제를 주님께 맡기면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은 주님이 지신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베드로전서 5:7)
내가 밟고 있는 땅에서 문제를 바라보지 말라. 하늘 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계신 하나님의 믿음을 구하라. 믿음이 언제 들어오는가?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로마서 10:17). 말씀을 통해 그 문제를 이길 수 있는 믿음이 들어 오도록 소리로 중얼거리며 하가하라. 그 하가의 소리를 타고 한 순간 문제를 푸는 믿음의 열쇠가 들어올 것이다.
8) 운전 중에
운전을 정기적으로 하는가? 자동차 안 만큼 하나님과 교제나누기 좋은 장소는 없다. 큰 소리로 찬양하고 기도해도 뭐라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자동차는 내 태도에 따라 가장 최상의 예배 장소가 될 수 있다. 자동차 안에서 하가하는 말씀을 큰 소리로 선포해보라. 그 소리에 마음 중심을 실어 보라. 그 소리가 자동차의 공기를 바꿀 것이다.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임재가 하가 소리를 타고 그 자리에 풀릴 것이다.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말씀을 선포하는 것 만큼 좋은 기도는 없다. 말씀 자체를 소리내어 풀면 그것이 가장 좋은 기도다. 자신의 생각으로 기도하기 보다 암송하고 있는 여러 말씀을 계속 선포하라. 선포하는 중에 감동주시는 것이 있으면 그 감동을 고백과 기도로 바꾸라. 이런 흐름을 타고 목적지 도착전까지 하가로 계속 기도하다 보면 자동차가 곧 지성소임을 경험한다. 자동차는 하나님과 나만의 추억을 쌓는 가장 귀한 예배 장소다. 신호 대기 중에 우두커니 기다리지 말라. 멈춤 신호가 켜지면 ‘하가’하라는 뜻이다. ‘내가 여호와를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항상 모십니다’ 고백해 보라. 자동차 핸들은 내가 붙들고 있지만 내 인생의 핸들은 주님이 붙들고 계심을 깨달을 것이다.
9) 가장 사소한 일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이 또 하나 있다. 임마누엘이다. 그 뜻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만유에 편재(遍在, omnipresence)하신다. 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누추한 우리 안에 거하기로 결정하셨다. 거듭났다는 것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심을 의미한다. 그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 영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다. 내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어떤 상황에서든 나와 함께 하신다. 임신한 여인은 모든 상황에서 조심한다. 임신 초기 태동이 없어도 자신이 임신한 것을 의식한다. 자신과 언제나 함께 하는 태중의 생명을 늘 인식하기 때문에 먹는 것, 말하는 것 등 모든 상황에서 조심한다. 거듭난 자 안에 하나님의 생명(조에, zoe)이 있다. 생명을 품은 자는 생명을 인식해야 한다. 이 생명을 인식하는 것이 곧 생명의 통제를 받는 것이다. 이 생명의 영에 통제를 받는 것을 ‘영적(프뉴마티코스)’이라고 한다. 임신한 여인이 모든 순간 태중의 생명에 통제를 받듯, 하나님은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생명의 영에 통제받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영적인 삶이다. 이 생명의 영에 통제를 받는 순간 하나님이 임마누엘로 드러나신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사소한 일을 떠올려 보라. 신문 보는 일? 손톱 깎는 일? 드라마를 보는 일? 설거지? 화장실에 앉아 있는 일? 과연 이런 일에도 주님이 함께 하실까하는 바로 그곳에 주님은 함께 하신다. 그동안 인식을 못했을 뿐인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6)
화초에 물을 주며 왜 하가할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가? 손톱을 깎으며 왜 하가할 생각을 못 해봤는가? 자신이 생각할 때 가장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일 중에 태중의 생명을 인식한 여인처럼 하나님의 생명을 인식하며 하가하는 훈련을 의도적으로 해보라. 이런 훈련을 통해 가장 사소한 순간에도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
10) 모든 시간 속에서
나는 영적인 존재다. 주님은 영이시다. 영과 영의 연결은 한 순간이다. 이성적으로, 감정적으로 준비하고 노력해서 절차에 따라 연결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마음 중심을 꿰뚫어 보신다. 주를 향한 마음속 갈망이 주님을 터치할 때 주님은 나의 마음을 터치하신다. 주님이 아니고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자인 것처럼 마음 중심으로 ‘주님~’이라고 부를 때 영과 영의 연결은 0.5초도 안걸릴 수 있다. 주님은 내 모든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와 함께 하신다.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란 마음 중심의 고백에 반응하기 위해 언제나 대기중이시다. 말씀을 입에서 떨어뜨리지 말고 주야로 ‘하가’하라고 하신 분은 하나님이다. 나를 귀찮게 하기 위해 하신 말씀이 아니다.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다. 내가 ‘하가’할 때 영이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시간 속에서 ‘하가’하길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내 심령 가운데 부어지길 기도하자. 말씀 자체가 내 모든 시간과 삶 전부를 주장할 때 하나님은 나의 삶을 형통케 하신다.
2-2. 어떤 방법으로든(how) – 형편과 상황 상관 없이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쉬지 말고 ‘하가’하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수아는 언제까지 순종했을까? 몇 일 열심히 하다 그만뒀을까? 여호수아는 백십 세까지 장수하며 큰 축복을 누렸다. 하가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되고 형통하리라고 한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여호수아에게 이뤄졌다. 여호수아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시간과 장소 상관 없이 말씀을 중얼거리며 하가했을 것이란 상상은 무리일까? 여호수아라고 매 순간 즐거웠을까? 여호수아 역시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말씀을 하가하기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지 않았을까? 시편 1:2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 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편 1:2)
시편 저자는 ‘즐거워 하여’라고 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모든 것에 불평하고, 어떤 사람은 모든 것에 즐거워 한다. 그 일을 대하는 태도가 감정을 결정한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못이기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못이긴다. 말씀이 ‘즐거워 하여’라고 했으면 내가 즐거워 할 수 있음을 믿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믿으면 감정이 따라 온다.
말씀을 끊임 없이 내 입술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그림자처럼 붙어 있게(shadowing) 할 만한 자신만의 방법들을 꾸준히 찾아 보자. 몇 가지 예다.
1) 부착물
포스트잇이나 종이에 ‘하가’하려는 말씀을 써보자. 컴퓨터, 냉장고, 문앞, 화장실 등 보이는 곳곳에 붙인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눈에 보일 때 마다 하가를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해보자. 눈에 보이는 부착물에 정성을 쏟으면 그만큼 애착이 간다. 부착물을 만드는 시간도 하가와 함께 할 수 있다. 만드는 과정 자체가 귀한 시간일 수 있다.
2) 스마트폰 배경화면
‘하가’하려는 말씀을 스마트폰 배경화면으로 만들어 보자. 스마트폰 만큼 접근성이 좋은 것이 없다. 하가 말씀을 배경 화면으로 하면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다. 포토샵과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해도 좋고, 종이에 쓴 것을 사진 찍어 배경화면으로 활용해도 좋다.
3) 말씀카드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말씀을 암송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은 역시 말씀카드였다. 디지털 기술이 점점 더 발전해 가고 있지만 손으로 쓴 말씀카드는 또 다른 감성을 제공한다. 말씀카드를 만드는 동안 외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가를 하며 떠오르는 소중한 사람에게 말씀카드를 만들어 선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4) 말씀을 음성으로 듣기
성경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 많아졌다. 하가를 진행하는 구절들만 따로 음성 파일로 만들어 보자. 출퇴근이나 이동 중에 반복해서 들으면 효과적으로 암송할 수 있다. 음성 파일을 구하기 어렵다면? 자신이 직접 녹음해서 듣고 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 안에 성우 본능이 있을지 누가 알랴?
5) 알람 활용
의식하지 않으면 흘러가는 대로 산다. 하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어도 바쁘게 살다 보면 생각조차 못하고 하루를 마무리 할 때도 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 시간을 정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했다. 다니엘처럼 하루 세 번 시간을 정해보면 어떨까? 나만의 하가 시간을 정하여 알람을 맞춰 보자. 알람과 함께 나만의 하가 시간을 갖고 짧게 기도한다면 시간의 주권을 주님께 드릴 수 있을 것이다.
6) 함께 하기
하가를 할 때 가장 좋은 것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같은 구절로 하가하는 것이 좋다. 하가를 진행하며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눌 때 말씀의 힘은 배가 된다. 또한 서로를 통해 하가를 계속 하게 하는 큰 동기부여를 받는다. 특별히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이라면 식사 시간 등의 특정 시간을 정하여 함께 암송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7) 자신만의 트리거(trigger) 계발
개에게 먹이를 주기 직전 종을 치면 나중에 종만 쳐도 침을 흘린다. 이를 ‘조건반사’하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가’를 하려 할 때 이 조건반사 원리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떤 특정 조건이 주어지면 반드시 ‘하가’를 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일으키는 특정 조건을 트리거(trigger)라 부른다. ‘하가’에 대한 자신만의 트리거(trigger)를 설계해보자. 예를 들어 ‘이빨을 닦을 때’, ‘샤워를 할 때’, ‘버스를 탈 때’, ‘일하기 싫을 때’ 등의 조건을 설정하고 그런 조건이 발생하면 무조건 ‘하가’를 하겠다고 마음 먹는 것이다. 이런 특정 조건에서 무조건 하가를 하는 훈련을 일정 기간 반복하다 보면 그런 조건 하에서 ‘하가’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 어색함을 느낀다. 어느새 습관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습관을 바꾸기 위한 훈련 방법으로 트리거 설계를 많이 이용한다. 자신만의 트리거를 설계해보자. 매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다음은 트리거 설계 샘플이다.
8) 하가 트랙커(tracker) 활용
자신만의 트리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습관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트랙커(tracker)’를 많이 이용한다. 트랙커는 설계한 트리거를 일자별로 잘 수행하고 있는지 한 눈에 보이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설거지를 하면 무조건 하가를 한다’고 트리거를 설계했으면 일자별로 잘 한 날에 스탬프를 찍거나 예쁜 스티커를 붙인다. 3일 정도 열심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빈 칸을 채우다 보면 약간의 고비를 만나도 채워진 칸을 보며 일주일을 끝까지 도전해봐야겠단 도전 의식을 갖게 된다. 빈 칸을 다 채운 후에는 스스로를 칭찬하고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음은 하가 트랙커 샘플이다.
기꺼이 죽으라.
야망과 소망과 전 존재에 대해
매일 죽으라.
그러면 영생을 발견할 것이다.
어떤 것도 남기지 말라.
포기하지 않는 그 어떤 것도
진정 네 것이 될 수 없다.
죽음을 통과하지 않은 그 어떤 것도
그 죽음으로부터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네 자신을 열심히 추구해보라.
그러면 결국 증오와 외로움과
절망과 격렬한 분노와
파멸과 부패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추구하면
결국 그 안에 던져진
다른 모든 것을 발견할 것이다.
Lose you life and you will save it.
Submit to death, death of your ambitions
and favorite wishes every day
and death to your whole body in the end:
submit with every fibre of your being,
and you will find eternal life.
Keep back nothing.
Nothing that you have given away
will be really yours.
Nothing in you that has not died
will be raised from the dead.
Look for yourself,
and you will find in the long run
only hatred, loneliness, despair,
rage, ruin, and decay.
But look for Christ
and you will find Him,
and with Him everything else thrown in.
– C. S. 루이스 –